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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9. 2020

고요한 낙동강 마을로의 여행

고요한 낙동강 마을로의 여행

                                                                              최정미


  키가 커다란 풀 사이를 서걱서걱 걸으면 먼 도로 위 아지랑이가 이글이글거리며 달려드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땅은 그야말로 불에 데일 듯 뜨거워 신발 없이 걷노라면 그대로 화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았다. 무더위의 이랑 속을 걷고 있노라니 분명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나섰던 발걸음이었는데 이것이 과연 피서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더위에 지쳐 연신 차가운 커피를 마셔가면서도 여름휴가를 집 밖에서 보내기를 마다하지 않는 많은 이들 중에 한 명이 나였다. 시원하고 편하기야 집에서 편안히 누워 에어컨 틀고 있으면 그만이겠는 것을, 차를 타고 굽은 산길을 넘고 터널을 들어가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나의 참신한 디딤이다. 다정스러운 이웃과 편안하고도 안정된 반복의 일상도 가끔은 잊어 보고자 한다. 굳이 수고로움을 무릅쓰고도 뙤약볕을 걸어보며 나는 내 동네와 다른 풍경을 가진 마을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외지를 가면 다른 말씨를 쓰는 외지인인 나를 마치 외국인 쳐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도 그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서로가 관찰자가 되는 셈이니 어쩌면 비스름하다.

  낙동강의 마을, 상주에 다다랐을 때였다. 트럼프 카드의 스페이드(spade)를 닮은 긴 삼각형(♤) 모양의 느티나무가 늘어선 도로를 지나치면 이번에는 길가의 흰 이팝나무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처럼 하늘거리며 펼쳐졌다. 도로를 따라 심긴 곱다란 진분홍 배롱나무를 따라가면 짙푸른 논밭이 펼쳐지고 길가의 꽃들은 잔잔한 낙동강의 물결을 따라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고요한 산은 연둣빛 낙동강을  푸르게 둘러싸고 아침을 곱게 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곶감 하면 떠오르는 곳, 상주는 푸르고 조용한 곳이다. 낙동강 생태 자원관이 위치해 있고 옛적부터 자전거가 유명하여 연세가 제법 지긋하신 분들도 자전거를 타고 어린 학생들도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박물관에는 오래된 외국산 자전거들과 축구공 자전거 등 진귀하고 흥미로운 자전거 전시로 가득해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가기에 알맞았다. 자유로이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은 이 마을처럼 한가롭고도 평온해 보였다. 광장에서 2인 자전거의 뒤편에 올라 탄 수녀님이 신록의 나무 곁을 지나치며 맑게 웃으시는 것을 보니 주변마저 환해진다.

  상주에서 유명하다는 성주봉 자연 휴양림에 들어선 물놀이장은 제법 인기였다. 얼음장처럼 찬 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다들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늘에 있어도 얼굴이 땀으로 녹아내리는 것처럼 뜨거운 날씨였는데도 물총을 쏘는 어른이며 튜브를 타는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을 다시 획득한 듯 풍덩거리며 놀고 있었다.  

  낙동강 생태 자원관은 전시도 볼 만하였지만 그윽한 노을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아이의 견학을 겸하여 가게 되었지만 자연경관이 매우 졌다. 심어 놓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모두 이름표 팻말이 붙어 그 지역의 생태를 잘 보전하여 보여주는 곳이었다.

  대기업 마트는 아니지만 비교적 큰 마트를 가서 양껏 과일도 담고 처음 보는 브랜드의 우유도 사보았다.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나는 우유가 국내에서 지방마다 다른 브랜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운 진열, 낯선 말투에 가격 비교할 정신이 없으니 대충 가격이 맞으면 집어 들어 장바구니에 넣다. 낯선 곳에서의 장보기는 솔찬히 재미다. 그래서 늘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마트를 가서 소소하게라도 장을 보는 걸 즐긴다.

  시내의 도로 한가운데 난 기찻길에는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의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하노이에서는 사진 잘 나오기로 유명한 관광 코스 중 하나였건만 이곳은 어째 관광객은커녕 사진 찍는 이 하나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내게는 생경하니 멋있어 보이는지라 찌는 듯 더운 날씨에도 차에서 내려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가족 중 원하는 이가 없어 지나쳐야 했다. 후에 무척 아쉬워서 그림 벽화가 무심히 그려진 그 담벼락이 눈에 삼삼하기만 했다. 이곳을 다시금 찾을 빌미가 되겠지 생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다.

  여행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르기에 어두운 벽을 타는 것 마냥 예측 불가하다. 허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이다. 막연한 들먹임과 헛된 희망도 동시에 품게 되는 여행은 마주하게 될 낯선 여정이 고단하면서도 새로운 만남이 즐거운, 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어디를 가게 될 지에 관한 동선을 짠다든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우는 일은 무료한 일상에 던져진 머리 아픈 고민거리이면서도 활력이 된다.

  고로 여행은 미래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미지의 설렘을 주는 동시에 두려움을 안겨준다.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맛을 벗어나 뭘 할 것인지에 대한 전적인 나의 선택과 믿음이 필요한지라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하지만 미래를 응시하며 과거를 매 순간 접어 나가는 그 느낌은 여행만이 줄 수 있음이다. 여행을 갈 적마다 나는 매 번 나의 조그마한 식견을 부끄러워하고 만다. 그리고 편협한 생각의 과거가 나로부터 멀어짐에 감사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고 작은 가를 넓디넓은 낙동강의 마을이 또 한 번 일깨워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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