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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9. 2020

달의 토끼를 보았나요


                                                                         최정미

 검은 호수 위로 계란 노른자처럼 노오란 달이 낮게 드리운 밤이었다. 먼 길을 달려 우리는 춘천의 호숫가의 숙소에 밤 늦게서야 도착했다. 밤이 깊어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기야는 봄날의 달빛을 보러 옥상 정원에 올라갔다. 봄도 여름도 아닌 날씨에 따뜻한 미풍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깊은 호수에 드리운 달빛은 물결을 따라 일렁이고 밤의 달에는 토끼가 있었다.


 최근에 친구와 들렀다던 피문어 집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던 그는 달을 바라보던 나에게 물었다. 지금도 토끼가 보이냐고. 내가 그와 아는 사이였을 적 달이 밝은 그 밤에 담배를 문 그에게 내가 “달 안에 토끼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 때까지 달 안에 있는 토끼를 본 적이 없었다고 했었다. 내가 처음 달의 토끼를 보여주었다는 옆지기의 말에 나는 다시금 달 안에 사는 토끼의 귀 모양을 흔쾌히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은 토끼가 보이냐고 물었다.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고 그는 대답했다. “어떻게 토끼가 안 보이지? 두 귀만 찾으면 되는데.” 하고 나는 주먹을 쥐고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어서 손 모양을 토끼처럼 만든 후 달 안 토끼의 귀 쪽으로 주먹을 꽉 쥔 손을 갖다 대었다. 이십 년 전의 너도 지금과 똑같이 주먹을 쥐고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펴서 토끼를 만들어 달 앞에 가져다 놓고 “이제 보이죠?” 하며 알려줬었다는 말에 우리는 웃고야 말았다. 이제 보이는지 묻는 내게 그는 20년 전의 나의 대답이 똑같았다고 말했다. 두 귀만 찾으면 된다고.


 밤의 호수 위에 뜬 달을 보며 나는 달 안에서 토끼의 두 귀를 찾았다. 그리고 ‘나한테는 매번 달을 볼 때마다 보이는 달의 토끼가 누군가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구나. 왜 안 보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여행에서 돌아와 익숙한 집 앞 공원의 밤 산책을 혼자 하다가 하늘을 보니 그 보름달이 또 호젓이 토끼를 품고 떠 있었다. 내 눈에는 달의 토끼가 자꾸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달을 볼 때마다 보이는 달 토끼. 또 누군가에게는 보였다가 말았다가 하는 달 토끼.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눈을 씻고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누가 달 토끼를 처음 보여주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개밥바라기별이 뜰 무렵의 거무스름한 경계의 하늘빛을 바라보다 별이 하나 둘 떠오르면 하얀 달빛에 점점 진해지던, 달 안에 사는 잿빛 토끼를 만나 좋아했다.


 삶에서 어떠한 것들은 보려고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다. 욕심내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수록 일이 더 안 풀릴 때도 있다. 나의 노력과 열정만으로도 세상이 보름달처럼 휘영청 밝아지리라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어려움과 고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따금 하늘은 무서운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쏟아 붓듯이 내리고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비를 피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뿐.


  오늘 밤의 하늘은 고요한 달과 별을 품고 있다. 삶은 내 소유일 수 없어 모래처럼 부서지듯 흩어지기도 한다. 방황의 지도는 끝이 없는 여정으로 안내한다. 이 길에 무엇이 있을지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아무도 알려줄 수 없다.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방황을 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내가 이름을 아는 별들은 더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사랑과 애정으로 바라보는 하늘에서는 달 토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밤에 하얗게 달이 보이는 날이면 달 속에 사는 토끼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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