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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9. 2020

목련꽃 발자국

봄볕 아래를 서성거리며 어린 시절 아이의 발바닥을 닮은 봄을 줍는다.



흡사 물방울을 닮은 잿빛의 고운 솜털이 나무의 가지마다 하늘을 향해 매달렸다. 그것은 위로 솟구칠듯하고 단단하다. 곱고 여린 꽃잎을 간직한 꽃 싹은 열매처럼 탄탄한 기상을 지니고 있다. 겉은 반지르하니 털 짧은 강아지 털을 매만지는 듯하다. 꽃샘추위가 올 적에 이렇듯 가지마다 하늘에서 똑똑 떨어진 물방울마냥 맺히곤 봄바람이 따스하게 부는 날 하얀 목련 꽃 잎을 피워낸다. 어린 날 마당에 앉아 소꿉놀이할 적에 황톳빛 흙에 떨어진 목련의 보드랗고 하얀 꽃잎은 놀이 속에서 버섯이 되어 돌에 으깨어지고 아이들의 소꿉 장난감 안에서 반찬이 되었다가 이내 버려지곤 했다.



아, 이런 하얀 목련 꽃이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았을 때 나는 따라 걸었다. 아기의 아장아장한 발자국 같은 여리여리한 꽃잎들이 봄 햇살에 새하얗게 빛났다. 어여쁜 아기 발자국과 똑 닮은 꽃잎이 그렇게 단단한 잿빛 싹 안에서 자란 것이었다.



목련 꽃이 활짝 폈던 어느 날, 어린아이 키우던 시절 저렇게 작은 발자국을 지녔던 아이 뒤를 따라 걷던 초보였던 엄마가 나였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와 함께 걸었던 나의 그 봄날의 꽃과 같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겠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하얀 발자국들 앞에서 괜히 눈물이 고였다. 십 년 전 꽃나무 밑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손을 잡던 나는 어느덧 중년이 되어 이제는 목련 꽃잎에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뒤뚱뒤뚱 거리는 아기의 발걸음에 행여 넘어질까 종종 걸으며 따라가던 나의 모습도 전지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 아장이던 발걸음이 그리워 목련꽃 핀 나무 아래서 물방울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소매 부리를 적시다 부끄러워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내 키보다 커진 아이의 발을 어루만져 보며 그의 어린 날을 기억해본다. 목련 꽃잎 같던 아기 발이 어느새 나의 발보다 커져버렸다. 목련 꽃이 보송한 솜털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아름답게 꽃봉오리를 피워내듯이 아이도 자신의 시간 안에서 그럴 것이다. 꽃봉오리 각각이 자신 안에서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내듯이 말이다.



꽃보다 예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어주던 아이에게 나는 꽃과 같은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참 행복한 엄마였다고 따뜻한 봄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목련 꽃잎이 너의 아기였을 적 발자국과 닮아 생각나는 아련한 추억들이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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