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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9. 2020

소독약 냄새를 이긴 밥 냄새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결혼 후 한참 깨소금 볶았어야 하는 신혼 때 나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원을 그리도 많이 갔었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유난했던 아들 때문이기도 했고 당시 서울에 있던 신혼집에서 암 투병을 하신 시아버님 때문이기도 했다. 아들은 돌 전 무렵 폐렴을 시작으로 모세 기관지염과 장염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계속 반복했다. 아들이 조금 잠잠해지니 시아버님의 암 투병이 시작되었고 나는 반찬을 해서 병원에 나르기 바빴다. 병원을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그전까지는 가끔 맡는 일상의 작은 조각 정도였다면 그 시절의 내게는 일상의 연속함이었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오고 가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를 읽으며 그나마 젊은 체력으로 버텨내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놀라기보다 덤덤히 짐을 싸는 지경에 이르자 병원에서 수다 떨며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서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텔레비전도 보며 퇴원을 격려하는 사이가 되곤 했다. 그런데 말이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분주한 간호사들로 가득 찬 병원 전체를 맴도는 이 소독약 냄새를 이기는 강력한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급식처럼 배식되는 병원의 밥 냄새였다. 배식 카트가 복도에 일렬로 늘어서면 병원 문을 지나 시야를 가리는 커튼 사이를 지나 밥과 국과 반찬 냄새가 온 병실에 가득 찬다. 실로 놀라웠다. 그리고 다들 안 그런 척해도 마치 비행기에서 앞 줄부터 나누어주는 기내식 기다리듯이 반찬 냄새가 퍼지는 동시에 위장과 코를 자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러보면 침대 앞 접힌 간이 탁자를 조용히 꺼내고 기다리는 이들이 제법 되었다. 그것은 지루한 병원 수용 생활에 지친 환자나 그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에게 작은 변화의 기다림이자 소위 요즘 말로 소확행이었다. 아들도 밥 냄새가 복도에 퍼지기 시작하면 탁자를 펼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이름이 불리면 잽싸게 식판을 받아 오늘의 반찬 냄새를 맡고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주 메뉴를 찾아 맛있는 상상을 펼쳐내며 숟가락을 들었다. 병원밥 맛없다고 하는 것이 말짱 헛소문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다들 맛나게 먹었고 빈 식판을 차곡차곡 정리하면 어느새 배식 카트는 사라졌다. 우리는 복도에 퍼질 밥 냄새를 또 그렇게 기다리며 밥때가 다가오면 카트 바퀴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배식 카트의 둔탁한 소리보다 맛있는 냄새가 늘 더 빨랐고 강렬했다.  나는 아이가 남긴 반찬과 밥을 싹싹 비워 먹었다. 아이가 좀 크자 남기는 것이 많지 않았고 모자라기도 했다. 장염으로 입원할 적엔 금식 표식이 걸리기도 해서 밥 냄새만 맡아야 하는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흰 죽이라도 나오면 어찌나 좋아하던지... 탈수를 막고자 이온음료가 등장하자 아이는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을 만큼 좋아했고 퇴원 후 먹을 음식 리스트를 작성했다. 치킨, 피자, 계란찜, 스파게티 등등 어찌나 리스트가 많고 길던지.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늘 희망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밥을 먹고 약을 잘 먹으면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실에서 우리는 탈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약을 먹기 위해, 살기 위해, 그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로 배식 시간을 기다렸다.


병원이라는 곳이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다들 울상이거나 지치고 힘든 기색이 역력한 곳이다. 사람들이 기가 빨린다고 할 만큼 외래 진료만 다녀와도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런 장소이기에 병원의 배식 카트에서 풍겨지는 밥 냄새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잘 알 수 없는 곳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시시 때때 맞추어 알려주었고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삶의 뜨거움이었다. 사람들 밥  잘 먹고 약 잘 먹으면 병이 나았고, 퇴원하게 되어 서로축하하고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사람 사는 곳에는 따스한 밥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지독한 소독약 냄새를 병원 배식 카트의 밥 냄새가 덮어내었듯이 우리네 힘들고 팍팍한 삶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함으로 덮어 나아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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