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10화 우문현답

by 서로소

"라면 나왔다 게임 그만하고 라면 먹자."

"싫어."

손과 눈은 핸드폰에 가 있다. 가로로 누운 핸드폰의 모양새로 보니 웹툰 보는 중 아니고 게임 중이다. 게임 재밌는 거 알지 알지. 나도 올라갈 스테이지가 더 없을 만큼 해봤다.

"나 혼자 다 먹어도 되는 거지?"

"싫어."

"이제 그만하고 먹자."

"히히,좋아."

아.. 아들 밥 먹이기 힘들다. 아침에 학원에서 하는 특강 수업에도 이미 지각해서 전화까지 받았다.


"어머니,j가 아직 안 와서 전화드렸습니다."

"죄송해요. 조금 전에 출발해서 곧 도착할 거 같아요."

늘 죄송하고 미안한 게 많은 사춘기 엄마다.

"네. 알겠습니다."

11시까지 가야 하는데 11시 15분에 집에서 나섰다.


# 10시 45분:

화기애애하게 콘프레이크를 우유에 말아먹고 있었다. 남편이 내게 선물한 꽃바구니에 남편 B 이름이 내 이름보다 더 큼직막 한 걸 보고 나는 아침을 먹다 말고 웃었다.

"이 꽃바구니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당신 같아. 흐흐. 오늘 밤 주인공은 B야 B ~B야 B~

오늘 밤 주인공은 j야 j야~"

나는 노래를 불렀고 아들은 신난다고 춤까지 췄다.


# 10시 50분:

"나갈 준비 하자. j야."

아들은 갑자기 느려졌다. 그야말로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 침대에 널브러져 누웠다가 옷을 머리에 걸고 다니고 결국 11시가 넘어서야 바지까지 입었다.


# 11시 :

"j야, 11시에 출발이 아니라 11시까지야. 양치질 얼른 하고 가."

이쯤까지도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상태였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준비해서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면서 참았다.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다.


# 11시 5분:

아들 녀석은 치약이 없어서 안 나온다며 치약을 짜 달라고 들고 나왔다. 하아...

"그 옆에 다른 치약 있잖아. j야."

남편은 눈치를 보더니 -아마 내 눈에서 레이저가 약하게 쏘아져 나오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을 시점- 새 치약을 창고에서 꺼내왔다.


# 11시 10분:

남편이 일이 있어 나간단다.

"휴우. 아들 좀 데리고 나가."

아들은 양치를 끝내고 짐을 싸다가 생수를 하나 꺼내 달란다.

봇짐 챙기는 것도 아니고 사이드백에 핸드폰을 찾아서 넣는데 억만 년은 걸리는 듯하다. 이제 저 녀석의 모든 행동이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로 보이는 건 내 눈에서 일어나는 착시 현상인가 싶다. 인내의 한계치가 다가옴을 느낀다.

"엄마, 화나려고 한다. 시간은 지켜야지! 너 5분 더 지체하면 나 진짜 화 많이 날 예정이야! "

목소리톤이 올라감을 너도 나도 알고 있다. 그 와중에 물을 챙겨준다.


11시 15분:

아들 j가 드디어 집을 나섰다.


11시 20분:

핸드폰에 학원명이 찍히며 전화가 울린다.


이런 상황이었다. 12시 50분 상냥한 아들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린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침에 이미 생성된 인내의 사리들이 어딘가로 날아가서 숨었는지 나도 상냥해졌다.

"엄마~나 김밥집 가면 돼?"

"어, 거기서 만나."

엄마한테 뭘 얻어먹을 때는 기가 막히게 밝고 명랑해진다.

아침부터 사리 백만 개 만들어주신 아들 뭐가 이쁘다고 김밥과 라면, 떡볶이를 사준다.

아들 친구 녀석은 같이 먹는다 하다가 바로 수업이 있어 못 먹었다.

이 아이들이 너무나도 마음 짠하다. 주말에 늦잠도 푹 자지 못하고 학원에 나와 공부하고 밥 먹을 짬이 안나 편의점을 가서 한 끼를 때운다.


"j야, 잘 먹고 잘 살려고 공부하고 일하는 건데 잘 먹기도 힘드네. 네 친구 배고프겠다. 먹지도 못하고 공부하는 게 안쓰럽네. 네 아빠도 바쁘다고 자꾸 끼니 놓치고 안 챙겨 먹어서 엄마는 속상한데. 결국 먹고살려고 다들 이러는 건데. 그렇지?"

"걱정 마, 엄마. 나는 잘 먹을 거야."

"그래, 결국 공부도 일도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거니까. 건강 잘 챙기는 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너 시간 잘 지켜. 중요한 거야. ok?"

한마디 이상 더 하면 잔소리다. 내 경험상 이 이상 얘기하면서부터는 귀에서 귀로 스쳐 지나간다. 한 번만 이야기해야 마음에도 살짝 스친다.


아들에게 음료수를 사주며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어젯밤 감은 머리가 또 번지르하게 기름이 돈다. 학원 다니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힘든데 힘들어도 하는 게 맞단다.

"왜?"

"엄마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글쓰기 계속하잖아. 나도 학원 다니는 거 힘들긴 한데 계속할 거야."



우문현답이다. 우리는 가끔 어린 스승을 만난다.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어른들보다 미숙해 보이지만 어른들보다 직관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통해 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이 이제 모든 게 익숙해진 어른이 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때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어른은 걱정으로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모험을 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이다. 도전 자체로 설레고 도전이 꿈이고 희망인 그런 나이다. 그래, 아직 어리고 젊기에 직접 부딪혀 보고 시행착오도 겪어보는 게 맞다. 나도 그랬다. 부모님 말씀은 귀에 잘 안 들어오고 다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의 생이 단풍이 드는 가을 어디쯤이면 아이의 생은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봄 어디쯤일 것이다.

나의 가을과 너의 봄. 아름다운 계절이다.

힘들어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 자체가 제 인생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인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 노란 단풍이 든 가로수길을 손잡고 내려오는 가족이 정다워 보였다. 가을의 풍요를 담은 따뜻한 햇살 아래, 떨어진 낙엽마저 그림 속의 풍경처럼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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