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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Mar 21. 2023

보물찾기


 “오랜만에 오셨네요.”

손님이 뜸해진 시간 주방에서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신다. 

“네, 잘 지내셨어요? 국수 생각나서 왔어요.”

몇 해 동안 내가 단골로 들르는 국숫집이다. 혼자 와서 후루룩 먹고 가도 좋은 곳이다. 옛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은 크게 시끄럽지 않고 국수로 요기를 하고는 떠난다. 마치 정류장 같다. 


국수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면 잔치 국수가 내게 전해진다. 

국수에는 계란 지단, 가늘게 채 썰어 볶아낸 당근과 호박, 버섯, 김 가루 등의 고명이 언제나 단정히 올라가 있다. 국물을 먼저 한 숟갈 맛본다. 늘 한결같은 따끈한 육수의 맛이 입 안 가득히 퍼진다. 따뜻한 위안이 필요할 때 이곳을 들르는 이유이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유달리 면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와서 둘이 킥킥대며 국수를 먹곤 했다. 종알종알 하루 일상을 얘기하기도 하고 서점에 들러 방금 산 책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참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조금은 쓸쓸하게 나 혼자 국숫집에 간다. 마음이 헛헛할 때도 날씨가 유난히 추울 때도 따끈한 국수는 변함없이 그곳에 있다. 몸이 고단하거나 마음이 힘든 날 혼자 가서 국수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오면 몸도 따뜻해지고 마음은 든든해진다. 그럴 때 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다.      


 나는 씩씩한 어른이었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그리고 다른 이를 북돋아 주고 위로했었다.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명랑하고 밝았다. 

힘든 일을 겪은 날도 나는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눈에서 눈물이 나는데도 괜찮은 거라고 스스로를 참 많이도 속였다.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파도를 겪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괜찮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울고 싶을 때는 울고 괴로울 때는 괴로워해야 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걸 너무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최근 국숫집을 가는 날이면 나는 이미 가슴 전체로 울고 있었다. 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질이 좋지 못한 거친 티슈에 가끔 눈물을 찍어댔다. 그리고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때 국수가 내 앞에 놓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티슈에 가볍게 맺힌 눈물을 닦고 국수를 먹고 나면 참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국숫집에 가서 나는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주인아저씨가 그런 나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고맙다고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만 건네셨다.      

그렇기에 부스스한 나의 마음을, 외톨이처럼 느껴지는 외로움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나의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언젠가 나의 마음이 봄의 햇살처럼 온전히 따뜻해지면 나도 타인의 눈물을 보듬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 국수 한 그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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