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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an 22. 2021

별은 별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영화를 보면 잘 울었다. 슬픈 드라마를 봐도 잘 울었다. 인간극장이나 동행 같은 TV 프로그램도 늘 나의 눈물샘을 자극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기 일쑤였다. 얼마 전부터 보고 있는 드라마의 장르는 코믹 스릴러인데 그 드라마를 보다가도 극 중 인물의 서사에 눈물이 났다.

슬픈 음악을 듣다가 울컥하고 울 때도 많아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의아해했다. 멀쩡히 잘 있다가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나였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은 내게 왜 우냐고 물으셨지만 딱히 그럴듯한 대답을 못했다. 그냥 노래가 슬퍼서요..라고 하기에는 급우들에게 좀 창피한 사춘기 소녀였다.  어린 시절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늘  바가지를 갖다 대면  바다도 채울 거라는 농담으로 나를 웃기려고 하셨다. 서운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마음속에 넣어두었다가 한참 있다 꺼내 서럽게 울기도 해서 가족들이 당황해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몇 시간 전 또는 며칠 전 있었던 서운한 사건들이었다. 아주 어릴 적은 울었고 조금 커서는 왠지 창피하여 눈물을 숨겼다. 우울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때로는 예민함으로 대신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많이들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 까르르 재미있다고 웃다가도 금방 애잔한 가을의 모습에 슬퍼지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녀시절이기 때문일 테다.

잘 웃기도 하는지라 내가 울보인지는 가까운 가족인 남편만 알고 있다. 남편은 함께 TV나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늘 나를 흘깃 살펴본다. 대부분 나는 이미 눈물을 뚝뚝 흘리는 중이거나 소리 내지 않고 우는 중이라 옷깃이 이미 다 젖어있다. 정말  하나 슬플 거 없어 보이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아리면 대책 없이 눈물이 난다. 또는 누군가와 만났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아픔이 가슴속 깊이 전해지면 집에서 가만히 생각하다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다 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래서 슬픈 가사가 있는 음악도 피하는 편이다. 아가씨 때는 화양연화니 글루미 선데이 같은 영화와 ost도 좋아했는데 육아를 하다 보니 그런 감성을 계속 지니고 살기에 힘들어졌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발랄하고 밝은 생기 있는 엄마인 내가 좋았다. 아이를 키우며 잃어버렸던 동심에 동화돼서 밝아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하는 말들은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떠도는 말처럼 예뻤다. 조랭이떡은 눈사람 떡이 되었고 브로콜리는 초록 나무였다. 초록의 작은 나무를 먹는다며 좋아하는 아이 곁에 있으니 즐거웠다.

하지만 원래 성정이 어디 갈까.. 여전히 만화를 보고도 도서관 구석 책상 위에서 엉엉 울고 만다. 나를 펑펑 울린 만화는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였다. 웹툰 나빌레라를 만화방에서 보며 훌쩍이기도 했다. 엄마는 만화도 꼼꼼하게 보느라 오래 본다고 같이 간 아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훌쩍였다. 내가 울거나 말거나 아들은 쓱 보고 시크하게 본인 만화를 즐기는지라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저러다가 엄마가 또 맛있는 걸 먹으며 깔깔 웃을 거라는 걸 아는 거다.

나는 감정의 바다가 일렁이는 세상살이 중이다. 슬프면 울고 기분 나쁘면 화도 내고 즐거우면 웃는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런 나를  내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
밤하늘의 별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계절마다 별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로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인적이 드문 밤, 가족들과 마스크를 쓰고 눈 천사놀이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어린아이처럼 놀았다. 그 시간이 모처럼 참으로 행복했다.

남편은 남편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아이는 아이의 자리에서 하늘의 별처럼 우리 모두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느라 다들 자신의 시간 속에서 애쓰고 있음을 안다. 돈을 버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비한다. 그런 마음 없이는 수  십 년, 현관문을  일찍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분주히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도 가족을 사랑해서이다. 나 혼자 먹겠다며 식사를 그렇게 부지런히 챙기기는 힘들 것이다. 가족에게 희망의 꽃이 되어주는 아이까지.  늘 곁에 있어 당연한 것 같을지라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늘상 밤하늘에 보이는 별이지만 그 별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나는 또 울보가 될지도 모른다.
하늘의 별자리처럼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빛을 내어주는 별들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내 자리의 빛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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