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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Nov 11. 2023

양말은 뭐든지 될 수 있었다.

양말은 뭐든지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색깔과 무늬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패셔너블한 자태를 뽐내며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냄새나는 천 취급을 받으며 천대받기도 했다.


양말은 사람들의 발을 둘러싸며 함께 했다.

땀을 흡수해 주고 추위로부터 따스히 감싸주고 발을 보호해 주었다. 어떤 이들은 양말로 개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말은 마음이 넓은 이처럼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모양과 길이는 제각각이었다. 로마형 발이든 그리스형 발이든 야위거나 통통한 발이거나 길이만 어느 정도 맞으면 다 수용해 주었다.


그러한 양말에 구멍이 났다.

열심히 살아온 자의 구멍이기도 했고 숨겨온 발가락을 드러내는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워쓰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다.


양말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가진 물건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어린아이에게는 인형이 되기도 했고 크리스마스날에는 선물함이 되어 주었다.


양말은 신는 이에 따라 냄새를 내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 사뿐히 걷는 여인 그들이 내는 발의 내음은 양말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루종일 달라붙었다가 떼어지러 갈 때 양말은 더러운 벌레처럼 취급받았다.

분명 신겨질 때는 두 손으로 꼬옥 붙잡아 주었는데.


양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슬프고 힘들어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태어날 수 있었다.

양말은 날실과 씨실이었을 때부터 역마살이 새겨진 친밀함이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함께 하자 했을 때도 함께 떠나다가 버려졌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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