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멈추고 나니 시샘 어린 봄바람이 시린 바람을 연신 불어댔다.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밀지언정 햇살은 나날이 따사로워지며 살랑거렸다. 꽃망울이 가지마다 싸리 잎처럼 넘실거리더니 속살거리며 한 잎 두 잎 꽃을 피워냈다.
봄이로구나. 봄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냉이와 달래의 제철이라 쌉쌀한 봄나물의 땅 속 흙냄새 가득한 풍미를 봄의 밥상에 들일 수 있기 때문이며 연둣빛 잎이며 따뜻한 봄 햇살이 피워내는 꽃들이 메말라가는 가슴을 적셔주고 눈을 호강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계절이 주는 설렘은 중년의 가슴을 봄비처럼 두드려준다.
어릴 적부터 봄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단연코 으뜸은 좋아하는 새콤달콤한 딸기를 실컷 맛볼 수 있음이다. 세월이 좋아져 비닐하우스 재배로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한들 봄의 딸기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신선하고 달콤하다. 그럼에 이맘때 가게 앞을 지날 적마다 그 많은 진열된 과일을 제치고 빨간 딸기만 눈에 든다. 초록빛 꼬투리를 달고 빨갛게 익은 싱싱함을 한껏 뽐내며 콕콕 점박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딸기의 유혹을 매번 뿌리치기란 그야말로 힘들다. 어느덧 내 손에 한 소쿠리의 딸기 뭉치가 대롱대롱 잡혀 있곤 했다. 내 입에 들어갈 딸기가 큼직하고 맛 좋은 그것이면 좋겠지만 주부의 입장에서는 장보는 돈이 늘 아쉽기 마련이다. 머리로는 크고 알 굵은 몇 점 들어 있지 않은 딸기를 고르라 하지만 가성비 좋은 중간 사이즈를 많이 사서 가족들과 나누어 먹으리라 하고 냉큼 사버리는 일이 잦다. 딸기 철이라 크기에 상관없이 웬만하면 맛이 좋기만 한데 어느 날은 영 달콤하지도 새콤하지도 않은 밍밍한 딸기를 집어와 후회하기 마련이다. 이런 날이 일 년에 한 번쯤은 돌아오는 딸기잼을 만드는 그날이다.
온 집안에 그야말로 신혼과도 같은 달콤한 냄새가 하루 종일 그득하다. 세상 어떠한 향수와도 비교가 안 되는 딸기잼의 내음은 잃었던 입맛도 돌아올 듯 따스하게 온 집안을 메운다.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딸기잼을 빵에 펴 발라 입 안 가득 베어 물 때면 행복한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렇듯 봄의 딸기가 주는 행복은.. 따뜻하고 정겹다.
마치 봄의 정령이 온 집안에 행복의 내음을 뿜어주는 것만 같은데 내 어찌 딸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맛이 있으면 맛이 있는 대로 맛이 없으면 없는 대로딸기는 나의 사랑이다.
무릇 1월이 한 해의 시작이라지만 내게 새로 시작하는 기운을 주는 것은 언제나 생동감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봄이었다.
지난 한 달은 나보다 어린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투병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정신없이 보낸 겨울의 끄트머리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는지도 모르게 겨우내 마음이 얼어붙고 근심 가득한 3월을 맞아 꽃망울도, 그 무엇도 눈에 차지 않더니 이제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봄 꽃도 보이고, 딸기도 사고 딸기잼도 만들었다.
한결 가벼워진 걸음의 소소한 장보기와 같은 일상은 흥미진진하고 가슴 뛰게 하지는 않지만 나와 가족을 지켜주고 지탱해주는 주춧돌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잘못 산 밍밍한 딸기가 새콤달콤한 잼으로 바뀌는 마법과도 같은 행복은 결국 여유로운 마음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만 원짜리 한 다라의 딸기는 봄바람처럼 설레었다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가 이제 내일 아침의 맛난 잼이 되어 가족들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