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소 Mar 26. 2021

달콤한 딸기잼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눈이 멈추고 나니 시샘 어린 봄바람이 시린 바람을 연신 불어댔다.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밀지언정 햇살은 나날이 따사로워지며  살랑거렸다.  꽃망울이 가지마다 싸리 잎처럼 넘실거리더니 속살거리며 한 잎 두 잎 꽃을 피워냈다.

봄이로구나. 봄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냉이와 달래의 제철이라 쌉쌀한 봄나물땅 속 흙냄새  가득한 풍미를 봄의 밥상에 들일 수 있기 때문이며 연둣빛 잎이며 따뜻한 봄 햇살이 피워내는 꽃들이 메말라가는 가슴을 적셔주고 눈을 호강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절이 주는 설렘은 중년의 가슴을 봄비처럼 두드려준다.

어릴 적부터 봄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단연코 으뜸 좋아하는 새콤달콤한 딸기를 실컷 맛볼 수 있음이다. 세월이 좋아져 비닐하우스 재배로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한들 봄의 딸기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신선하고 달콤하다. 그럼에 이맘때 가게 앞을 지날 적마다 그 많은 진열된 과일을 제치고 빨간 딸기만 눈에 든다. 초록빛 꼬투리를 달고 빨갛게 익은 싱싱함을 한껏 뽐내며 콕콕 점박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딸기의 유혹을 매번 뿌리치기란 그야말로 힘들다. 어느덧 내 손에 한 소쿠리의 딸기 뭉치가 대롱대롱 잡혀 있곤 했다. 내 입에 들어갈 딸기가 큼직하고 맛 좋은 그것이면 좋겠지만 주부의 입장에서는 장보는 돈이 늘 아쉽기 마련다. 머리로는 크고 알 굵은 몇 점 들어 있지 않은 딸기를 고르라 하지만 가성비 좋은 중간 사이즈를 많이 사서 가족들과 나누어 먹으리라 하고 냉큼 사버리는 일이 잦다. 딸기 철이라 크기에 상관없이 웬만하면 맛이 좋기만 한데 어느 날은 영 달콤하지도 새콤하지도 않은 밍밍한 딸기를 집어와 후회하기 마련이다. 이런 날이 일 년에 한 번쯤은 돌아오는 딸기잼을 만드는 그날이다.

온 집안에 그야말로 신혼과도 같은 달콤한 냄새가 하루 종일 그득하다.  세상 어떠한 향수와도 비교가 안 되는 딸기잼의 내음은 잃었던 입맛도 돌아올 듯 따스하게 온 집안을 메운다.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딸기잼을 빵에 펴 발라 입 안 가득 베어 물 때면 행복한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렇듯 봄의 딸기가 주는 행복은.. 따뜻하고 정겹다.

마치 봄의 정령이 온 집안에 행복의 내음을 뿜어주는 것만 같은데 내 어찌 딸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맛이 있으면 맛이 있는 대로 맛이 없으면 없는 대로 딸기는 나의 사랑이다.

무릇 1월이 한 해의 시작이라지만 내게 새로 시작하는 기운을 주는 것은 언제나 생동감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봄이었다.

지난 한 달은 나보다 어린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투병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정신없이 보낸 겨울의 트머리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는지도 모르게 겨우내 마음이 얼어붙고 근심 가득한 3월을 맞아 꽃망울도, 그 무엇도 눈에 차지 않더니 이제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봄 꽃도 보이고, 딸기도 고 딸기잼도 만들었다.

한결 가벼워진 걸음의 소소한 장보기와 같은 일상은 흥미진진하고 가슴 뛰게 하지는 않지만 나와 가족을 지켜주고 지탱해주는 주춧돌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잘못 산 밍밍한 딸기가 새콤달콤한 잼으로 바뀌는 마법과도 같은 행복은  결국 여유로운 마음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만 원짜리 한 다라의 딸기는 봄바람처럼 설레었다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가 이제 내일 아침의 맛난 잼이 되어 가족들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 밤은 왠지 꿈도 달콤할 것만 같아 기대를 한껏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