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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May 30. 2024

문학과 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암 의심 소견 종잇장을 손에 받아 들었을 때 집에 바로 가지 못했다.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한참 동안 주체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을 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원망스러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암을 유발했을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모두 한탄스럽고 남겨질 아이가 걱정되었다.

스트레스받았던 모든 순간들이 원인인 것 같았고 참고 또 참았던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힘들었던 관계들은 모두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일까. 구체적으로 해보지 않았던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또 큰일이 되었을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나의 남은 인생이 몇 개월, 몇 년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떤 것들은 뚜렷하명확해졌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가 순식간에 다 스쳐 지나갔다. 암을 유발했을 얼굴들 시어머니, 시누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어도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 생활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이혼까지 결심하게 만들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고 말한 뒤에야 우리 집을 떠난 그들이 내 몸속에 암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다음 나를 힘들게 했던 엄마는 복잡한 심경으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심을 갖기 위해 인내를 가지고 걷고 산책하며 나는 힘든 관계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이 보였다. 당장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내가 아쉬울 것이 없다고 느껴졌지만 남겨질 아이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내가 떠난 뒤 충격을 받을 남편은 잘 살까. 아이는 누가 보살펴줄까. 마음의 상처가 남을 텐데.

제대로 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날들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배려가 희생이 되어버린 친정 가족과의 관계는 그로부터 조금 지나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동생에게도 엄마가 되어버린 게 부담스럽고 엄마조차 내게 의지했다. 나는 엄마의 엄마인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관계였다. 심리적으로 엄마가 없다고 느꼈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나의 상태가 도대체 뭐가 뭐인지 모르겠는 혼돈 상태였다. 그들이 필요할 때는 늘 돕고 배려했는데 내가 힘든 상태에서 나는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의지가 되지 않을 터였다. 아프다고 하면 병원을 찾아준 것도 나였고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면 전화가 왔다. 그제야 일방적으로 나는 그들의 의지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댈 수 없는.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없고 나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고 의지할 때 힘이 되어주기만 한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돌아보니 친정 가족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댁식구들도 모두 내 집에 붙어있었고 나만 힘들어졌었다. 그리고 안쓰러운 마음에 관계를 이어나가던 동네 엄마들도 그들의 사정이 딱하다고 위로를 해주기 바빴다. 그들에게 내가 암인 것 같다는 소견서를 받아서 괜찮은 병원을 물어보았을 때 남들은 한 번도 받지 못한 보험료 받아서 좋겠다는 모진 말들을 뱉어내는 것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보다 힘들어 보이고 안쓰럽다고 늘 위로만 하는 관계는 잘못되었구나라는 걸.

다쳐서 장애가 생긴 아빠 때문에 온 가족이 겪은 심리적 고통이 나만 피해 간 것도 아닌데 나는 아빠가 안 되어서 도와줘야 한다고 초등학생, 그 어린 나이에 사춘기도 제대로 못 겪고 꾹꾹 부모 힘든 점만 생각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점점 통제가 심해지고 욕설과 모진 말들로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던 엄마 곁에서 싸우고 대항도 해보았지만 마음은 점점 멍들어갔을 텐데. 젊어서 우울한 내가 우울한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연애를 하며 다른 소소한 행복으로 덮어버린 청년기를 보내며 나는 자신을 알아차릴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이 모든 일들이 왜 이렇게 일어나는지도 모른  계속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며 힘들기만 했다.

그래서 한참이 지나 돌이켜 보았을 때 어쩌면 의사가 건네주었던 그 종잇장이 하늘에서 나를 가엾이 여겨 내게 보내준 메시지 같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그 힘겨운 삶 속에 놓여 배려가 희생이 되어버린 그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헤어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칼처럼 나의 가슴을 온통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그 종잇장이 어쩌면 구원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

각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얽히고설키어서 가족을 힘들게 하고 이웃을 힘들게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남을 더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남 또한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것임을 너무나 늦게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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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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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사랑하라고 수많은 책에서 읽고 읽었건만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해 준 적이 없다.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착한 엄마, 착한 친구, 착한 이웃...

내 마음 안의 그림자까지 온전히 사랑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이제 사랑해 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어두운 모습과 착하지 않은 내 모습까지.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나를 슬프게 했는데 형체를 알지 못할 아련한 슬픔이었다. 지금은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슬픔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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