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꿈꾸기를 멈춘다면
폐허의 복원은 우연한 발견 때문이었지요
유적이 발굴되었을 때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어요
숭숭 뚫린 구멍에 석회 물을 부어 넣었더니
놀랍게도 사람 형상이 굳어 나왔다고 해요
허공도 사실은 누군가의 틀이었던 거죠
그래요, 나는 당신 꿈에 주입된 복제본이에요
하지만 그런 당신도 에디션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요
화산폭발에 놓인 최후의 모습들을 보았어요
죽음이 간절해하는 것은 결국 삶이라는 것을
절박은 누군가의 형틀이겠지요
우리, 라는 자리에 석회 물을 흘려 넣고 싶었어요
껴안은 채 수천 년 묻혔다가 복원된 형상엔
영원도 묻어 있을까요
기억을 흘려 넣으니, 유적지의 휑한 바람벽조차
그 자리를 지키느라
그리 오래 견뎌왔다는 걸 알겠어요
숱한 감정이 찍혀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원형으로부터
점점 마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서 나를 깨어내고 있어요
-< 슈뢰딩거의 이별 >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