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장마 이야기
하루의 좋은 재료들로만 채워 놓던 SNS 기록을 잠시 하지 못하겠었다. 스스로가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좋지 않은 이야기도 기록해 본다.
나는 몇 주 전 비정상적인 장마에 수해를 당했다. 그 뒤로는 하루에 근심과 걱정만이 있었다. 좋은 시간보다 좋지 않은 시간이 많으니 일기도, 어떤 식으로의 기록도 모두 하기 싫었다. 정말로 잊고 싶은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동안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대부분이 좋은 시간인 편이었다. 퇴근 후 가족과 한상에 둘러먹는 저녁밥, 자전거를 타고 보던 노을, 강아지와 산책. 그것들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해서 잃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눈치채지 못했다. 안정 속에서 주어진 하루를 잃어보니 그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우리 가족은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러자 그토록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되찾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값지고 소중해서 아끼고만 싶다.
자연은 멋지고도 두렵다. 내가 겪은 재난은 지구의 상처를 보게 했다. 비정상적인 장마에 자고 있던 내 발이 물에 철썩 대던 그 끔찍한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지구가 울고 있다. 재난은 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내가 누워있는 이 이부자리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사는 이곳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맨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생각하니 노 플라스틱이 생각났다. 내가 일하는 가게에서 샐러드를 사 먹을 땐 반찬통을 가져가고, 음료를 마실 땐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쓰지 않는다. 일할 때 불가피하게 써야 하는 니트릴 장갑은 깨끗이 씻어 말려 한번이라도 다시 사용한다. 지구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한 첫걸음마를 뗀다. 더 좋아질 순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지만 지구의 상처가 이쯤에서 멈춰주길 소원한다. 국가와 기업이 움직이며 너와 내가 자발적으로 환경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는 부단히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당신들까지도 내가 겪은 두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함께 읽은 누군가가 이젠 나와 같이 음식을 반찬통에 포장해오고 물통에 커피를 담아 먹으며, 마시기 위해 굳이 빨대를 쓰지 않는다면
내가 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공개한 것이 도리어 자랑스러워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