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으로부터 일탈

by 시선

나는 매일 아침 서울로 가는 출근 버스 안에서 잠을 잤다. 일정한 버스의 엔진 소리와 함께 고속도로를 진입하는 순간, 버스는 달리는 요람이 되고 모든 승객들은 마술처럼 잠이 들었다.


나에게 출근길의 잠은 항상 투쟁의 대상이었다. 신년이 되면 매번 다이어리에 ‘출근길에 잠 안 자고 영어 공부하기’라는 단골 멘트를 적었다. 하지만 매해 영어 단어장을 펼치기보단 쪽잠을 택했고 잠과의 전쟁에서 패하기 일쑤였다.


잠으로부터 일탈은 나만의 도서관 세트를 준비하고 나서부터였다. 내 작은 도시락 가방 속에는 도시락이 아닌 책과 보온병이 들어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한 아이리쉬 향 원두커피와 주말에 새로 산 책, 나는 이것을 ‘도서관 세트’라 불렀다. 더운 여름에는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커피를, 추운 겨울에는 뜨끈한 커피의 도서관 세트를 준비했다.


모두가 잠든 출근버스 안, 도시락 가방을 열고 나를 실으려는 잠으로부터 탈선을 시작한다. 오직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 그 시간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또는 한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출근길 한 시간으로 저 멀리 지리산에 다녀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평창에 사는 한 작가를 만나고 오기도 했다. 그래도 잠은 이따금씩 나를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도시락 가방을 다시 열어 보온병을 꺼냈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원두를 간 보람을 느끼는 시간. 입에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아이리쉬 향이 머리끝까지 전해질 때쯤 ‘꼴깍’하고 마신다. 머릿속에 잠시 찾아왔던 잠을 단번에 내쫓는 순간이다. 무심코 본 창밖의 햇살이 함께 잠을 내쫓으며 숙명과도 같았던 잠과의 투쟁에서 마침내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좋은 순환이 생기기도 했다. 책은 책으로 물꼬를 터, 한 주에 책 하나를 읽으면 그 주말에는 읽은 책에 소개되었던 책을 구경하러 서점에 들렀다. 그리고 제법 괜찮을 정도로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매년 멋지게 계획했던 영어 공부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잠든 버스에서 홀로 깨어 꺼내먹는 마음의 양식은 생각보다 든든했다.




글과 사진 / 장소희 @pppmpmf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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