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용인 시골 마을에는 공장과 물류센터가 많다. 그중에서도 파스 공장은 월급을 많이 준다고 소문난 곳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뒷집 아줌마, 동네 이장 딸, 이웃집 아저씨가 그곳에서 일을 했다. 예전부터 할머니도 나더러 그곳에 들어가면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할머니의 말을 들은 채도 않던 내가 제 발로 그곳을 찾아갔던 건 스물한 살 때였다. 대학교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친구들과 나는 처음으로 방진복을 입어보고는 꺄르르 웃어댔다. 나는 그곳에서 파스가 아닌 알약을 곽에 포장하거나 병에 들어있는 약을 박스에 옮겨 담는 일을 했다. 파스 포장 일을 하던 몇몇 친구들은 일도 힘든데 파스 냄새까지 독하다며 다음 날 아르바이트를 그만뒀고, 얼마 안가 나도 그들을 따라 일을 그만뒀다.
대학에 가서는 4학년 겨울에 조기 취업을 했다. 서울의 한 회사로 취직이 됐다. 나는 서울로 취직만 하면 다 잘 된 건 줄 알았지만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도 재미없는 데다 야근이 잦아지면서 나를 위한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서울로 출퇴근하던 내 모습은 겉모습만 번지르르했고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버텨보겠다고 3년을 일하다 회사를 그만뒀다.
시골로 내려왔다. 일을 그만둔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놀고먹는 게 불편했다. 몇 년간 삭제해둔 알바천국 어플을 다시 깔았다. 동네 주변을 검색했다. 역시 공장뿐이었다. 나는 그나마 집에서 제일 가까운 파스 공장에 연락했다. 그곳에서도 때마침 사람이 부족했는지 나더러 바로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7년 만에 다시 파스 공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신정 다음 날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공장으로 갔다. 공장 안은 커다란 주차장 주위로 창고 같은 건물이 너 다섯 채 있었다. 예전에 내가 알약 포장일을 하던 일반제제동도 보였다. 나는 주차장에 서있는 경비 아저씨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했다. 잠시 후 한 젊은 여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
“파스 냄새가 강해서 힘드실 수 있어요.”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일반제제동을 지나 파스동으로 안내했다. 7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친구들이 힘들다고 했던 그 파스동이었다.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민트향 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장판으로 된 바닥 앞에서 나는 신발을 벗었다. 앞에 보이는 철제 신발장에 신발을 넣었다. 그 옆에 탈의실이라고 쓰여있는 문을 열었다. 탈의실로 가는 내내 바닥은 얼음장 같았고 걸을수록 발이 시렸다. 젊은 여자는 나에게 초록색 방진복과 하얀 실내화를 건넸다. 7년 전 내가 친구들과 그 옷을 입고 꺄르르 웃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날 본 방진복은 하나도 웃기지가 않았다.
방진복을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와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젊은 여자는 나를 보고 작업장 한켠의 간의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곧 생산 과장님 오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차 과장이라는 남자를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키가 크고 말라 보이는 50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한번 보더니 다짜고짜 자신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며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나더러 멀찍이 앉지 말고 가까이 앉을 것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그 사람 앞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주의사항 몇 가지를 들었다. 그는 늘상 하는 말인 듯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공장 안에서 사탕, 초콜릿 몰래 먹지 마세요. 사탕 껍질 파스 포장지 안에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분명히 말했어요. 고등교육을 다 받은 사람들이 말이야, 말을 안 들어 쳐먹어.”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그였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생산라인에 투입됐다. 생산 과장인 그는 레일 앞 머리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며 작업자들과 함께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배정받은 작업은 포장 기계 레일 위에 파스를 다섯 장씩 재빨리 올려주는 작업이었다. 다섯 명이 함께 작업하며 쳇바퀴처럼 도는 레일을 위를 빈 공간 없이 파스로 매워야 했다. 혹시 모를 불량을 막기 위해 숙련되고 노련한 반장이 레일 맨 앞머리에서 수량을 체크하거나 레일의 빈 공간을 매웠다.
처음 일해보는 나는 레일 맨 뒷머리에 섰다. 맞은편 사람이 파스를 다섯 개씩 신속 정확하게 올리라는 짤막한 설명을 해줬다. 나는 끈적이는 파스를 한 움큼 쥐었다. 다섯 장을 세었다. 서투르게 레일 위로 올렸다. 시끄럽고 빠르게 지나치는 레일 위에서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개수를 틀리지 않으려고 신중히 파스를 셌다. 맨 앞의 반장은 빈칸이 많이 내려온다며 느린 나를 다그쳤다. 내가 레일을 매우지 못할수록 주변 사람들이 바빠졌다.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최대한 몸을 구부려 가까이서 파스를 셌다. 몸을 구부릴수록 강한 민트향이 코를 찔렀고 눈이 시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조금이나마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레일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금방 6개월이 지났다. 일은 노력할수록 빨라졌다. 함께 일하던 영우 이모도 꾀부리지 않는 나를 예뻐했다. 영우 이모는 여기서 일한 지 제일 오래된 이모다. 그녀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했다.
이모와 나는 같은 라인에서 함께 일했다.
처음 온 사람들이 많은 날에는 이모와 내가 힘을 합쳐도 레일을 매우지 못했다. 처음 온 사람들이 일이 더뎌 불량이 많아지고 기계 속 포장지가 자꾸 뒤엉켜버렸다. 그러다 결국 기계가 멈춰버렸다. 영우 이모는 처음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얘야, 이건 빨리 해야 된다니까. 아이고 오늘 일 못하겠네.”
레일 앞머리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던 차 과장은 그녀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왜 못해. 못하겠으면 나가. 당신네들 아니어도 할 사람 쌔고 쌨어.”
기계도 고장 났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영우 이모의 혼잣말이 못마땅했는지 차 과장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영우 이모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기계 정비로 인해 채우지 못하는 물량은 모두 그의 책임이었기에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서로 쉬쉬거리며 눈짓으로 싸인을 보냈다. 모두가 그의 한마디에 눈을 내리깔고 일을 했다. 당신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 앞에서 경력 30년 차 영우 이모는 묵묵히 일을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모욕스러울까 나는 이모를 본체만체했다. 손은 일정하게 움직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그녀가 들은 말이 계속 맴돌았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었을 때 나까지도 수치와 모욕감을 느꼈다.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그의 앞으로 가서 말조심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일만 했다. 하지만 그녀도 속으로 박탈감이나 상실감 또는 회의감 같은 종류의 감정들을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뒤 쉬는 시간이 됐다. 이모는 쉬는 시간 종이 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녀는 휴게실에 앉아 동료 이모들과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영우 이모 옆으로 갔다.
“과장님 진짜 왜 저래요?”
“됐어, 너 잘났다 하고 내버려 둬.”
“이모는 어떻게 30년 동안 똑같은 일을 했어요?”
“하하하. 어떻게 일했냐고? 자식새끼들 키우려고 했지. 자식새끼만 아니면 이깔랑거 안 하고 살어.”
이모는 방금 전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멀쩡했다. 하긴 그녀는 휴게실만 들어서면 하하 호호 유쾌해지던 사람이었다. 이모는 참 신기했다. 10분 동안에 아래층 탈의실로 내려가 과일도 깎아먹고 보온병에 타 온 뜨거운 믹스커피도 마신다.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못 본 사이에 금방 화장실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면 옷 빨리 갈아입기 대회를 하는 것처럼 그녀는 짧은 순간 휘리릭 하고 변신한다. 이모는 식사 후 동료들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공장 한 바퀴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이모에게는 락커에 던져 구겨진 옷보다 햇살 아래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였다.
“커피 한잔하고 가”
어느 여름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야외에 있는 자판기 옆을 지나치는데 이모가 나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줬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커피를 받아먹었다. 내 옆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이모의 모습은 작업을 할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작업복을 벗고 화사한 사복 차림에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에게 커피가 해독의 한 모금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쉬는 시간이면 빠른 걸음으로 탈의실에 가는 것도, 점심시간이 되면 구겨진 옷이나 신발을 안중에도 없이 나가버리는 것도, 모두 탁해진 마음을 정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둘러앉아 속상한 일을 털어놓으며 과일 한입에 또 믹스커피 한입에 날려 보낸다. 그리고 또 일을 한다. 달달한 한입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뻔한 하루를 알면서도 커피 한 모금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남은 하루를 보내러 갔다.
그녀는 공장에서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남들 앞에서 받는 상처 따위 자판기 커피 한 잔에 꿀꺽 삼켜버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일한 지 7개월째에 더 이상 못하겠다 싶었다. 과장 눈치를 보는 게 싫었다. 나는 마지막 날에 이모에게 박카스 한 병을 건네며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모는 나에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마. 나중에 만나거든 여기선 보지 말자.”
공장을 나서며 정문 옆에 커피 자판기를 봤다. 한동안 저걸 보면 이모 생각이 나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