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 커피우유를 보면 할머니와 가던 목욕탕이 생각난다."
금요일 밤이었다. 이제 막 독립한 희원의 집에 갔다. 집들이였다. 맥주를 사러 마트에 들렀는데 삼각 커피우유가 보였다. 오랜만이었다. 목욕탕 생각이 났다. 나는 그것을 보면 항상 목욕탕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할머니랑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다 차가운 커피우유를 마시던 날을 생각한다. 푹푹찌는 목욕탕 안에서 갈증을 해소하던 그 맛을 생각하며, 나는 오랜만에 삼각 커피우유를 집어 들었다.
초등학생도 안 됐던 것 같다. 할머니와 대중목욕탕에 다녔었다. 동네에 하나 있던 목욕탕은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였다.
여름이었다. 나는 가벼운 리넨 원피스를 입고 할머니를 따라갔다. 할머니의 손에는 플라스틱 목욕 가방이 들려있었다. 우리는 목욕탕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오른쪽 카운터에 섰다. 할머니가 계산을 했다. 키가 작은 나는 카운터 밑의 울퉁불퉁한 벽돌을 만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계산을 마친 할머니를 따라갔다. 신발장이 나왔다. 번호 적힌 열쇠들이 주욱 꽂혔었다. 그 앞에서 할머니를 따라 신발을 벗었다. 할머니 자리 아래쪽에 내 신발을 넣었다. 락커를 잠그고 열쇠를 손목에 찼다. 신발장을 지나 여자 표시가 그려진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탈의실이 나왔다. 습하고 따듯한 공기가 조금 답답했다. 정면으로는 간이매점이 보였다. 테이블 위에 때밀이와 수건이 개어져 있고, 그 옆으로 꽃무늬 속옷들이 몇 개 걸려있었다. 그곳에서는 음료수와 삼각 커피우유를 팔았다. 나는 ‘무얼 사달라고 할까’ 하며 매점을 들여다보았지만, 할머니는 그냥 지나쳤다. 아쉬웠었다. 신발장 열쇠에 적힌 숫자와 똑같은 번호를 가진 락커를 찾았다. 목욕탕이 작아 입구와 스무 발자국이 채 되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원피스를 벗고 팬티만 내리면 다인 나와 달리, 할머니는 가슴을 조이는 속옷과 목걸이, 귀걸이까지 푸를 것이 많았다. 일찍이 발가벗은 몸으로 할머니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만 했다.
“할머니, 나 커피우유.”
“째끔한게 무슨.”
할머니가 주는 지폐 한 장을 가지고 매점으로 뛰어갔다. 삼각 커피우유를 샀다. 우리는 나란히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목욕탕 안을 들어갔다. 할머니는 나를 먼저 목욕시켰다.
“할머니 아파.”
“가만있어. 할미도 힘들어.”
팔부터 다리까지, 땀을 흘리며 할머니에게 몸을 내어주는 시간에 목욕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삼각 커피우유를 쳐다봤다. 커피우유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커피우유 먹고 싶다.’
할머니의 앞에 앉아 다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가 내 뒤에 서서 등을 닦아주었다. 할머니가 때수건에 비누를 묻혀 등을 닦아주면 나의 목욕은 끝이 났었다. 할머니가 내 등에 샤워기를 갖다 대고 따듯한 물로 비누 거품을 닦아냈다. 등이 뽀드득거렸다. 할머니가 샤워기의 방향을 자신의 몸쪽으로 틀었다. 할머니의 목욕이 시작되었고, 그제야 나는 삼각 커피우유를 마실 수 있었다.
마트에서 맥주와 오징어, 과자, 삼각 커피우유를 사서 희원의 집에 들어갔다.
“오 좋은데.”
일이 늦게 끝난 세연도 곧 도착했다. 우리는 곧바로 저녁을 먹었다. 희원이 연희동에서 고추잡채와 군만두를 사다 줬다. 치킨도 있었다.
우리는 한 손엔 맥주, 한 손엔 각자의 안주를 들었다. 나는 고기와 피망이 듬뿍 들은 고추잡채를 집어 들었다.
“짠!”
“축하해. 대출의 노예가 된걸.”
희원은 나를 째려보며 시원한 맥주를 꿀떡꿀떡 삼켰다. 나는 반질반질한 고추잡채를 크게 한입 먹었다. 세연은 닭다리를 베어 물었다. 우리는 일을 마치고 온 터라 배가 고팠었다. 눈앞에는 하도 맛있는 것 투성이라 마트에서 사온 삼각 커피우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희원이 하는 대출 이야기를 듣다 맥주캔이 가벼워졌을 때다. 희원이 맥주를 꺼내 준다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희원의 표정이 굳었다.
삼각 커피우유가 터져있었다. 마트에서 내가 그것을 집어 올렸을 때 한번, 희원이 걸으며 또 한 번 떨어뜨린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커피우유가 플라스틱 냉장고 선반을 따라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터진 커피우유를 집어 싱크대로 옮겼다. 꼭지를 잡고 가위로 잘랐다. 남은 커피우유를 컵에 옮겨 담았다. 희원은 한숨을 쉬며 작은 냉장고 안을 들어내 선반을 닦았다. 나는 이왕 터진 김에 커피우유를 마시기로 했다. 시원해진 커피우유를 쭉 들이켰다. 한 모금 삼키고 숨을 쉬었다. 진한 밀크커피 향이 났다. 아주 달고 찼다. 예전 그 맛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갔을 때 마시던 차가운 커피우유 맛이었다. 나는 그걸 금세 다 마셔버렸다.
“아, 진짜 피가 도는 맛이야.”
희원은 입이 댓발 나와 냉장고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빼놓았던 냉장고 서랍을 다시 끼워 넣고 식탁에 앉았다. 우리는 다시 먹고 마셨다. 새벽 세 시까지 할 말도 참 많았다.
토요일 대낮이다. 집에 돌아왔다. 엄마 아빠는 일을 나갔을 테고, 할머니는 마실을 나가셨는지 아무도 없다.
‘목욕이나 해야겠다.’
내 방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나와 욕실로 향한다. 평일에 듣지 못한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몰아 들을 작정이다. 휴대폰의 라디오 어플을 킨 뒤 다시 듣기 버튼을 누른다. 블루투스가 연결된 스피커 안에서 김창완의 목소리가 나온다. 볼륨을 높인다. 욕실 안이 김창완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득하다. 따듯한 물을 튼다. 수증기가 욕실 안을 메운다. 팔부터 시작해서 다리까지, 마지막은 타월에 비누를 묻혀 몸을 닦고 물을 끼얹을 것이다. 할머니가 닦아주던 방식대로 말이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하는 것에 익숙하다. 몸을 닦으려 한쪽 팔을 드는데 마침 스팅(Sting)의 ‘잉글리쉬 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 노래가 나온다.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 소리가 욕실을 메운다. 경쾌한 리듬에 신이 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목욕을 한다. 반대쪽 팔을 들 때쯤 노래가 끝나고 사연이 나온다.
‘꿈도 습관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꿈을 꾸자고요.’
사연을 읽던 김창완이 말한다. 나는 어깨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노래와 사연이 반복되고, 삼십 분 정도가 지난다. 목이 마르다.
‘커피우유 먹고 싶다.’
따듯한 물에서 찬물로 바꿔 튼다. 그런다고 목마름이 가시진 않지만 말이다.
목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희 온겨?”
“응. 할머니, 나 물!”
내가 몸에 물기를 닦고 옷을 입을 동안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보릿물을 꺼내 컵에 따를 것이다. 부드러운 수면 잠옷을 입고 욕실 문을 여니 컵을 들고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할머니가 보인다. 나는 몸에 수증기를 머금은 채 할머니가 준 차가운 보릿물을 마신다. 젖은 머리에서 흐르는 물이 잠옷 위로 뚝뚝 떨어진다.
찬 물을 꿀떡꿀떡 마시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으유, 으유”한다. 이 겨울에 찬 물을 먹느냐고 혀를 차며 뒤를 돈다. 먹고 싶던 삼각 커피우유는 아니지만 차가운 보릿물에 입가심이 된다.
“할머니, 땡큐우.”
온수를 끈다. 아직도 해가 중천이다.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몸을 말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