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로그인' 그리고 '로그아웃'
S는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간혹 난감해할 때가 있다. 용인이라는 대답에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종종 “수지?”하며 S를 아는 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 ‘음’, ‘그러니까’만 되풀이하고 있는 S다.
S가 살고 있는 동네엔 지하철이 없다. 그래서 지하철 역 이름을 말할 수도 없다. 그나마 시내에 있는 경전철 역이라곤 S의 동네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수지가 아닌 용인을 설명할 때마다 S는 꼭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았다.
“양지파인리조트 아세요? 아니면 지산 스키장? 아, 아니면 에버랜드 있죠? 거기서 삼사십 분은 더 가야 해요.”
“처인구 들어보셨어요? 안성 아시죠? 수지보다는 안성이나 이천 쪽에 더 가까운 용인이에요.”
S도 용인에 살긴 한다. 용인시 처인구의 남동쪽 끝 동네, 아파트보다는 물류창고와 논이 많은 면 단위에 산다. ‘거의’ 서울인 수지와는 대각선으로 완벽하게 끝과 끝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출근길 S는 꽤 여유롭다. 집을 나와 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산과 하늘이 보이는 풍경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큰길이 나오면 블로그 어플을 켜고 찍은 사진과 함께 아침 단상을 적으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S는 마을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한다. 7시 20분 서울행 경일여객을 타고서 말이다. 경일여객은 진천 종합터미널에서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직행버스다. 버스는 중간에 네댓 번 국도변 동네를 경유하는데, S는 그 중간 경유지에서 탑승해 서울로 간다.
S는 좌석에 앉자마자 커튼을 친다. 버스가 출발하고 엔진의 일정한 진동이 느껴지면 S는 곧 잠에 든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 시간 동안 잠을 잔다.
경일여객이 서울에 다다르면 S는 서울로 ‘로그인’ 된다. 버스에서 내린 S는 더욱 빠르게, 바쁘게 걷는다. 수시로 핸드폰을 쳐다보며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겨를 없이 환승 게이트를 향해 걷는다. 정말이지 조금 전까지 여유롭게 아침 단상을 적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주한 모습이다.
한편, S는 주말에도 경일여객을 탄다. 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 컴컴한 평일 아침과 다르게 주말 정오가 되니 깨끗한 경일여객 내부가 S의 눈에 들어온다. S는 새 가죽시트 냄새를 맡으며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를 고른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옷가지를 정리한다. 커튼을 열어젖힌다. 서울로 가는 한 시간을 ‘잘’ 보낼 준비를 한다. 가방에서 평일에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책을 펼친다. S는 여유롭게 버스 안에서 밑줄을 그으며 책을 본다.
책을 읽다 문득 S는 평일과 사뭇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사내 행사에서 새해 다짐으로 출근길에 책을 읽겠다고 포고하던 것을 생각한다. 평일 내내 잠만 자다가 주말이 돼서야 책을 펼친 S는 자신의 모습에 괜히 멋쩍다.
S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집으로 돌아갈 막차 표를 미리 예매한다. 그리고서 애인을 만나 막차 시간까지 후다닥 논다. S는 대략 8시간 안에 애인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도 하고,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신다. 그리고 막차 시간 1시간 전 그와 작별한다. 왜냐하면 S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S는 혼자 지하철을 타며 이 찌질한 연애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곤 했다. 발그레한 얼굴로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S는 남부터미널역이면 귀신같이 눈을 뜬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 귀가 본능이다.
S는 정확히 막차 2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지상에 있는 터미널에 올라가는데 5분, 예매한 버스표를 수령하는데 3분,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7분 정도를 쓴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느긋하게 걸어가 경일여객에 올라탄다. S는 이런 식의 시간 배분에 매우 익숙했다.
밤 열한 시가 되어 동네에 내린 S는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한다. 다시 경일여객에 올라타야 하는 내일을 생각한다.
다시 아침이 되면 S는 대문을 열고 나와 집 앞의 산을 볼 것이다. 하늘을 찍을 것이다. 블로그를 켜고 아침 단상을 적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다시 이 경일여객에 올라탈 것이다. 그리고 바빠질 것이다.
S는 여행사에 다닌다. S는 자주 야근을 한다. 월초와 월말에 특히나 그렇다. 그때가 되면 S는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저녁도 먹지 않는다. 게다가 S의 팀은 야근이 잦기로 유명하다. S는 주로 호텔이나 리조트 예약 업무를 하는데 정말로 한가할 틈이 없다. 1분마다 울려대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모니터로는 밤 사이 고객들이 남긴 문의에 답변을 단다. 오후에는 앞서 말한 일을 하면서도 객실 상품을 여러 채널에 올리는 업무를 추가한다. S가 하는 예약 업무는 24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받기 때문에 업무의 특성상 마감을 할 수가 없다. 예약을 마치면 다시 예약이 쌓이고, 또 예약하면 고객이 취소하는 식이다. 계속되는 반복 업무에 S는 지쳐있다. S는 야근 때마다 10시에 막차를 탈 수 있을지 걱정하곤 했다. 그러다 9시가 넘으면 결국 노트북을 들고 회사에서 나왔다. 못다 한 업무를 집에서 처리하기로 하며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S는 일을 마치지 못하고 남부터미널로 향할 때마다 배가 고팠지만, 집에 가서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졌다.
월초였던 그날도 S는 일을 마치지 못해 어깨에 노트북을 이고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S는 지하철을 타는 동안에도 집에 가서 다시 일하는 상상을 했다. 그럴 때마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S는 경일여객에 올라타 잠시나마 눈을 감고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몸이 기울자 S는 마을에 거의 다 온 것을 느꼈다. 마을로 우회전하는 구간이면 S는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S는 몸을 세우고 자는 동안 손에서 놓친 노트북 가방을 다시 쥐어 들었다.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리는 S의 시선에 자그마한 갈색 개가 들어왔다. 목줄에 달린 끈을 따라 고개를 드니 잠옷 바지에 외투를 걸친 S의 아빠가 보였다.
“깜순아. 언니 내리네.”
S의 아빠가 집에서 키우는 개를 데리고 S를 마중 나왔다. 갈색 개가 S를 보자 앞발을 치켜들고 낑낑거렸다. S에게 빨리 자신을 아는 체하라고 아우성이었다. 아빠와 작은 개 앞에서 S가 처음으로 웃었다. 곧장 그들에게 달려갔다. 무거운 노트북이 S의 손에서 아빠의 손으로 넘겨졌다. S의 아빠는 이런 식으로 말도 안 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S는 그와 걸으며 제발 아빠가 오늘 힘들었냐는 둥, 배고프지 않냐는 둥,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S는 지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S의 아빠도 S와 함께 걷는 몇 발자국에 그 마음을 대충 짐작한 것 같다. 괜스레 깜순이의 이름만 불러대고 있었다.
S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아가미질 하는 물고기처럼 나쁜 것을 내뱉는 것 같았다. S의 아빠가 분위기를 전환했다.
“데이트할 때랑 같은 경일여객인데 기분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남!”
S는 치부를 들킨 듯했다. 아니라고 괜히 목청을 높였다.
“아니긴 뭐가 아녀! 애인 만나러 갈 땐 니나노 하다가 오늘은 죽 쒔네 그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아빠의 말에 S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이런 식의 장난 섞인 말투로 S의 기분을 푸는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둘은 함께 걸으며 집에 가 계란 탁 풀고, 파 송송 썰어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한다.
S가 웃을 때마다 앞서 가던 작은 개가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향해 꼬리 치는 작은 개를 보고 S는 마을, 마중, 아빠, 깜순이, 계란 탁, 파 송송, 그런 단어들을 생각했다. 그제야 S는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온종일 빠르게 흘러가던 도시에서 S가 ‘로그아웃’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