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의 화장대였다. 그 화장대는 서랍장이 되기도 하고 옷장이 되기도 했었다.
아래로 폭넓은 서랍 세 개가 꽂혀 있었다. 서랍 오른편엔 두 뼘 정도 되는 너비의 작은 서랍이 붙어 있고, 그 밑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여닫이문이 달린 수납장이 있다. 서랍 위 화장대에는 반달 모양의 거울이 있었고, 거울 맡에는 로션, 스킨, 립스틱 같은 화장품들이 놓여있다.
나는 그 커다란 엄마의 화장대 위에 자주 올라갔었다. 다섯 살 내 몸은 화장품이 놓이고 남은 공간에 꼭 들어맞았다. 빵을 가지고 화장대 위에 앉아 뜯어먹으며 반달 모양의 거울 위에 포켓몬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다 엄마 립스틱을 발라 보기도 하고, 서랍에서 액세서리를 꺼내 이것저것 몸에 걸쳐보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화장대에서 잘도 놀았었다.
1999년이었다. 여섯 살 나는 한 살 터울인 친척 언니에게 책상을 물려받았다. 베이지 톤의 나뭇결 모양의 시트지가 붙여진 책상이었다. 책상 밑 오른쪽에는 3단 서랍장이 있고, 그 위에 키보드 받침대 서랍이 달려있었으며, 왼편에는 내 키를 훌쩍 넘은 커다란 책장이 함께였다.
그 책상을 집으로 옮기고 며칠 뒤 아빠는 새 컴퓨터를 사 왔다. 모니터는 TV처럼 생겨서 뒤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아빠는 책상 오른편에 커다란 모니터를 놓았다. 책상 밑으로 본체를 놓고 여러 가지 선을 연결했다. 키보드 서랍에 마우스와 키보드를 올려놓으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이게 뭐야.’
책상에 앉아보니 이미 반 이상 차지한 모니터 때문에 스케치북 하나를 펼치기에도 비좁았다. 불편했다. 나름 새 책상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좁은 책상을 고등학생 때까지 썼었다. 둥근 모니터가 책처럼 얇아졌대도 여전히 책상은 비좁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과 불만이 늘어갔다.
고2 시험 기간 때였다. 틀린 문제가 있어 해설집을 봐야 했다. 두 가지 책을 펼쳐 놓기에 책상은 역시나 비좁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설집을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세워두고, 그 밑으로 문제집을 펼쳐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보면 벽에 기댄 해설집은 쓰러지기 일쑤였고,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해설집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책이 힘없이 엎어질 때마다 그냥 벅벅 찢어버리고 싶었다.
고3 때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자습실에서는 줄 맞춰 놓인 책상들에게서 새 가구 냄새가 났었다. 낙서 하나 없는 것이 말끔했다. 그것 중 하나가 내 것이라는 생각에 눈이 반짝거렸다. 책상은 양옆으로 가림막이 있고 널찍해 좋았다. 무려 교과서를 위아래로 두 개나 펼칠 수 있는 너비였다. 그곳에 앉으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책상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물건이 공용인 기숙사에서는 수시로 자리를 바꿔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상에 올려진 문제집과 교과서를 싸 들고 다른 사람이 쓰던 책상으로 옮겨갔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도 번듯한 내 책상이란 건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책상과 멀어졌다. 책상은 필요에 의해 도서관에서 사용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릴 때 언니에게 물려받았던 책상을 버리기로 했다.
회사 생활을 하고 나서는 책상과 더 멀어졌다. 이제 내 방에 책상 같은 건 하얀색 간이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것은 공부가 아닌 화장품을 올려두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독서 모임이 시작됐었다. 회사 대표는 전 사원을 대상으로 책을 읽고 나누게 했다. 마케팅 책을 억지로 읽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무리 관심 없는 책이라도 좋은 문장 하나씩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보니 예전보다는 책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스스로 책을 사고 집에서 읽으니 말이다. 막상 방에서 책을 보려니 화장품을 세워둔 간이 테이블이 비좁았다. 그제야 새삼 느꼈다.
‘책상을 갖고 싶다. 이제는 정말 새 책상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작년 8월 장마 때 비현실적으로 쏟아지는 비에 내가 사는 집이 물에 잠겼었다. 많은 것을 버렸었다. 온 가족이 집을 복구하는데 방 한쪽에서 거울 없는 엄마의 화장대가 보였다. 하단에서부터 한 뼘 정도 높이가 물에 젖은 모습이었다. 올려져 있던 반달 모양 거울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거울 없는 화장대는 서랍장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곧 버려질 것 같은 화장대가 끌려가지 않으려는 소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볼품없이 놓여있는 그것이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아빠, 나 저거 책상 할래.”
한창 벽지를 뜯으며 이마에 땀이 한창인 아빠가 말했다.
“저거를? 안돼, 버려. 물 먹은 건 못써.”
“왜, 엄마 화장대를 왜 버려. 서랍장 세 칸 빼고, 안에 붙어있는 도르래 같은 철은 드라이버로 빼면 되잖아.”
아빠의 만류에도 나는 엄마의 화장대를 책상으로 쓰겠다고 했다. 결국 그것은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돼서야 내 방에 자리를 잡았다.
새 책상이 생겼다. 겉모습은 낡았지만 새 책상이 생겼다.
이제는 서랍 세 칸이 들어가 있던 자리에 내 두 발이 들어가 있다. 오른쪽에 두 뼘 정도 되는 작은 서랍과 직사각형의 여닫이문 수납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렸을 때 자주 올라가 놀던 화장대는 이제 내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공간이 됐다. 이제 내 책상은 책 두 권을 펼쳐도 남을 만큼 여유롭다.
나는 매일 이곳에 앉아 많은 것을 한다. 오늘 낮에는 칼 세이건의 책을 보고 우주를 구경하기도 했고, 저녁이 되어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새 책상>이라는 글을 쓴다. 이곳에 앉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자정이 지났다.
이만 책상을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