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by 시선

글쓰기 수업에 다닌다. 글쓰기 수업이라고 해서 거창한 강의를 듣는 것은 아니다. 네 명이 빙 둘러앉아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써온 글을 읽고 가족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간질거리는 사랑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못할 법한 말을 생면 부지한 사람들 앞에서 한다.

목요일 오후 7시. 20대의 카페 아르바이트생인 나와, 30대의 초등학교 교사, 40대의 공인중개사와, 50대의 글 선생이 만난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글을 읽다 큭큭 대기도 하고, 훌쩍 거리기도 한다. 수업시간 동안 우리는 그렇게 글과 감정을 나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쓴 지 4개월째다. 요즘 나의 하루는 이렇다. 5시에 퇴근해 6시까지 저녁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8시까지 쓰기 싫어한다. 9시가 되면 진짜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유튜브를 보다 10시가 되어 책상 앞에 앉는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쓰기 시작하면 무아지경이다. 금세 새벽 1시를 넘기고 2시가 되어서는 ‘한 시간만 일찍 시작할 걸’ 한다.

목요일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예민하다. 일주일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글을 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족들에게 티브이 소리 좀 줄이라고 하거나, 말을 걸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지웠다가, 고쳐 쓰기를 반복한다. 난 작가도 아닌데 글쓰기에 매여있다.


글쓰기는 구속이다. 적어도 깊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다. 어느 날 글쓰기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형용사를 줄이면 좋겠어요. 글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에요. 글쓴이가 그것을 헤쳐서는 안 됩니다.”

나는 형용사를 잘 쓴다. 왠지 형용사를 많이 쓰면 감정이 잘 전달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깊은 글을 되기 위해서는 형용사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꾸밈없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 듯, 이해하기 쉽게 쓰라고 했다. 그래야 읽는 이에게 감정이 잘 전달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사실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주어, 동사, 목적어만 있으면 문장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앞 문장과 뒷 문장의 아귀가 맞지 않을 때, 앞 문장과 중복된 문장일 때, 단어 선택이 과할 때, ‘왜’인지 설명이 없을 때…. 문장이 안 되는 이유는 많았다.

또 다른 면에서도 글쓰기는 구속이다. 나를 책상에 묶어 놓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쓰기에 나는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다. 게다가 주말엔 애인한테도 가봐야 하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한다. 여러모로 글쓰기는 구속인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나를 이렇게 구속하는데 나는 왜 쓸까’하고 생각했다.


지난 목요일 점심이었다. 마지막 퇴고를 하고 한 주 동안 쓰던 글을 마감했다. 5시에 퇴근을 했고 6시까지 저녁을 먹은 뒤 수업에 가기 위해 6시 30분 택시를 탔다. 논과 밭, 호수를 지나 구불구불한 시골길로 들어가 산 아래 있는 책방에서 내렸다. 책방의 커다란 문 속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선생님이 보였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인사를 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글을 쓸 때는 다 비슷한 것 같았다. 무아지경이었다. 나는 넓은 나무 테이블에 앉아 수업을 기다렸다.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썼던 원고들을 훑어봤다.

나를 키우겠다고 축사에 소젖을 짜러 다니던 아빠 이야기, 낮잠 자는 나에게 묵직한 목화솜 이불을 덮어주던 할머니 이야기, 장마에 사라진 엄마의 책장 이야기….

내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그것들을 글로 옮겨 정리하다 보니 벌써 10개가 넘는 원고가 쌓였다. 적금을 한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도착했다. 우리는 맞은편에 앉아 “잘 지내셨어요.”하고 인사를 나눴다. 명함 내밀 듯 써온 글을 건넸다. 글이 ‘일주일의 산물’ 같았다. 글 속에 일주일 동안의 노력과 시간들이 모두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시작할까요.”

선생님의 신호로 우리는 한 명씩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서로의 문장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며, 웃기도 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땐 울었다. 나는 결혼 전 함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아빠에 대한 글을 읽다 울었고, 그녀들은 듣다 울었다. 나의 선생님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볼게요.”

선생님은 방금 전 우리가 읽고 울었던 문단에서 한 줄만 남기고 다 삭제해야겠다고 했다. 스스로도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웃긴다며, 그렇지만 읽는 이의 감동을 더하기 위해선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요리와 비슷한 것 같았다. 욕심을 부려 많이 넣다 보면 짜거나 싱거워져 오히려 맛이 없어질 때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면 충분할 것을 이것저것 더 쓰다 보면 오히려 감동이 덜한 것이다. 나는 마지막 문단의 다섯 줄 중 네 줄을 삭제했다.

밤 10시가 되어 수업이 끝났다. 머리가 맑았다. 어수선하던 마음을 글 속에 털어내서인지, 한 주 동안 신경 쓰던 글이 마무리돼서인지 마음도 가벼웠다.

조용한 시골의 밤, 택시를 타러 컴컴한 오솔길을 걸었다. 걷는 시간 동안 무서운 것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걷다가, 뛰다가, 비틀비틀, 자유로웠다.

한 주 동안 책상에 묶여 글을 쓰고 고치느라 진땀을 뺐지만, 그러는 사이 뒤죽박죽이던 마음을 정리했고 그 속에서 자유를 느끼기도 했다. 순간 ‘나를 구속한 글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대답이 생각났다.

‘어쩌면 자유롭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3월의 밤공기가 좋았다.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여났다. 봄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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