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방에 다닌 지 칠 개월째다. 나는 여전히 매주 한편 ‘나’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요즘 나는 글감 걱정을 반찬 걱정하듯 한다. 일을 하다가도 잠깐 멈춰 ‘이번 주엔 무얼 쓰지.’하고 고민한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오늘 저녁은 무얼 해 먹지.’ 하고 고민하는 엄마 같다.
어쩌다 한번 번뜩이는 글감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하다 말고도 고민했지만 글감은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저녁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빈 페이지의 깜빡이는 커서만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일기장이 떠올랐다. 곧바로 일기장을 펼쳐 여러 장을 넘기다 유난히 글자가 빼곡한 한 페이지에 눈길이 머물렀다.
2018년 1월 21일
...생각해보니 상관없는 것 같다. 어차피 그들도 나에겐 마이너니까.
그날은 워크샵이 끝난 뒤 회식이 있던 날이다. 나는 회사 술자리라면 늘 지루했다. ‘위하여’만 외치는 부장, 끼리끼리인 또래들 속에서 나는 이따금씩 ‘위하여’만 따라 외칠뿐이었다. 사실 난 남들처럼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 만큼 친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데면데면한 사람을 붙잡고 억지로 수다를 떨자니 그것도 귀찮은 노릇이었다. 나는 그저 감흥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지나니 몸이 비비 꼬이고 엉덩이에서는 쥐가 났다. 방바닥에 붙어있는 엉덩이를 좌우로 밀어 뒤로 슬금슬금 빠져나왔다. 결국 난 무리 속을 빠져나와 벽에 붙어버렸다.
그때 내 사수는 삼십 대 중반의 여자였다. 사수는 그 무리에서 누구보다 신나게 웃고 떠들던 사람이었다. 술을 먹던 사수가 뒤로 빠져있는 나를 보더니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는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사수는 그런 나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물었다.
“왜 여기 있어.”
나는 대충 속이 안 좋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못 어울리겠어요.’ 하는 표정이었다. 입을 삐죽 내밀고 불쌍한 눈으로 나를 보던 사수가 말했다.
“소희는 원래 마이너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 기분이 나빴었다.
그 일기는 회식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썼던 일기다. 그날 일기엔 자책이 한가득이었다. 학교 다닐 땐 아무와도 잘 어울리고 잘만 떠들었는데 왜 이렇게 변한 걸까, 하고 말이다.
그때 난 단지 웃고 떠들던 무리와 같은 감흥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회식자리에서 나는 웃고 떠드는 ‘주류’가 아닌 못 웃고 못 떠드는 ‘비주류’가 맞았던 것이다. 나는 술자리가 지루하기도 했지만 사실 외롭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난 비주류다. 주변 사람들이 매주 한편 글을 쓰는 나에게 ‘글은 무슨 얼어 죽을.’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주 글방에 간다. 글방에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 시골에 사는 사람, 도시에 사는 사람, 20대부터 60대까지, 빵집 아르바이트생, 교사, 공인중개사, 의사가 한 자리에 둘러앉는다.
수업이 시작되는 순간 제각각이던 사람들은 글을 매개로 연결된다. 스윽, 소리를 내며 서로의 글에 밑줄을 치기도 하고 또 훌쩍거리기도 하면서 조용한 교감을 한다. 나이와 직업은 달라도 글 속에서 만큼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된다.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글을 쓴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방에 모인 이들은 매주 한 편의 ‘나’에 대한 글을 써내려 간다. 글을 통해 과거의 아픔을 토해내고 상처를 치유한다. 지금을 음미하기도 하고, 때론 미래를 상상해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다.
이제 나는 단지 무리 내에서 같은 감흥을 가진 사람들을 주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로 나를 알아가는 사람. 나에겐 그런 사람들이 ‘주류‘다.
나는 작년에 회사를 그만둔 뒤로 집 앞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후 5시에 퇴근해 저녁밥을 먹고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하루이다.
이제 나는 직장인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술자리에 섞이지 못하던 ‘마이너’에서 이젠 글을 쓰는 ‘비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를 쓰며 깊어지는 지금이 좋다.
‘나’에 대한 글쓰기를 한 뒤로 남들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나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내가 생각하는 ‘주류’들을 만난다.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제 막 생각났다.
나는 비주류다. 나는 비주류에 대해 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타인 앞에 비주류가 되어도 괜찮아졌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