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번 쓰기 참 어렵다

by 시선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봄에 꺼낸 뒤 덮어 두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노래를 틀기 위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맥북을 열었다. 그런데 맥북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꼭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면 더러운 책상이 눈에 거슬리던 것처럼 글쓰기를 시작하려 하니 눈앞에 켜져 있는 맥북의 업데이트가 거슬렸다. 글을 쓰는 시간에 업데이트가 완료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업데이트 버튼을 눌렀다. 팝업창 하나가 떴다.

'업데이트를 하려면 25GB 이상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동영상 편집도 아니고 문서작업만 하던 맥북에 25GB도 남아있지 않다니. 말도 안 됐다. 용량 관리에 들어가 봤다. 맥북 안에는 기타 용량이란 것이 전체 용량의 3분의 2나 차지하고 있었다. 기타 용량이란 것은 각종 기록들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맥북을 샀던 2년 전부터 나는 기록들을 지운다거나 쓸모없는 파일을 지우는 등 용량 관리를 한 적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용량 관리가 시급했다.

용량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30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내 앞에 내가 가진 다이어리 중 가장 아끼는 몰스킨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필기도구 중 제일 비싼 실버색 샤프도 꺼내 놓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멀리 밀쳐냈다. 그리고 맥북을 앞으로 가져와 쓸데없이 용량을 잡아먹고 있는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의 파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수많은 파일 중 어떤 곳에 용량이 큰 파일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었다. 네이버에 검색을 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문자를 하기도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의 파일은 한 시간 가량이 지난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파일의 크기 순으로 정렬 한 뒤 용량이 제일 크다는 파일을 클릭했다. 어이없게도 많은 용량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화면 녹화 영상이었다. 처음 맥북을 산 뒤 화면 녹화 기능이 신기해 이것저것 녹화해본다는 것이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나는 그 쓸데없는 파일들을 마우스로 끌어 모조리 드래그했다. 그리고 삭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문제의 기타 용량이 80GB에서 30GB로 줄어들었다. 무려 50GB나 사라진 것이다.

겨우 이것 때문에 글을 쓰려고 했던 시간을 빼앗기 다니. 나는 계획대로 맥북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용량이 없다며 눌리지 않던 업데이트 버튼이 눌렸다.

업데이트를 진행시킨 뒤 맥북을 손에서 멀리 밀쳐내고 다이어리를 잡아끌었다. 실버색 샤프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글이 아닌 나만 보면 되는, 그러니까 잘 못 써도 되는 글을 썼다. 어쩌면 나는 글방을 다니며 합평이란 것을 하는 동안 글쓰기를 어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힘을 뺀다고 하면서도 '힘 뺀 것 같은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글쓰기는 어려운 존재가 돼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속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살고 싶다. 이젠 남을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쓸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글 한번 쓰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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