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by 시선

20년 지기 친구인 S와 테니스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반면 S와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촌 동네로 돌아온지 꽤다. 동네 빵 집에 매니저로 눌러앉은 나와, 엄마와 식당을 운영하는 S는 앞으로 매주 두 번 퇴근 후 테니스를 배우기로 했다.


오늘은 레슨 첫날이었다.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S와 나눠 먹을 간식을 챙겼다. 삶은 달걀 네 알과 닭가슴살을 에어 프라이기에 구워 도시락에 담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복귀해 오후 근무를 했다.

퇴근 후에는 커피를 사서 S의 식당으로 갔다. S의 식당 안은 저녁을 먹는 손님들로 붐볐다. 주방에 있던 S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 말했다.

"끈덕지게 잘해봐."

저녁 장사를 엄마에게 맡기고 운동을 하러 가서 미안한지 S는 엄마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사실 차가 있는 S덕에 테니스를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니스장까지는 동네에서 차로 4-50분 거리이고, 대학교 내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꽤 번거롭다.

나는 S의 차에 타 도시락을 먼저 꺼냈다. S는 운전을 하며 삶은 달걀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요지로 닭가슴살을 찍어 운전하는 S의 입에 넣어줬다. S는 한 입 가득 오물거리며 먹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먹었다. 우리는 각자 달걀 두 알과 닭가슴살을 쩝쩝대고 먹으며 코트장에 도착했다.


코트장에는 내 아버지뻘 돼 보이는 코치가 서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곧 바로 라켓을 전달 받았다. 라켓은 레슨을 받기 전 코치를 통해 중고로 구매한 것이었다. 비록 중고지만 첫 라켓인지라 우리는 이리만지고 저리만지며 싱글벙글이었다.

코트장은 깨끗하고 넓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넓은 곳 중 웬 컨테이너 박스 앞에 섰다. 코치는 우리에게 기본자세를 알려주더니 컨테이너 박스 창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며 연습을 하라고 했다.

"원, 투, 날려"

코치는 포핸드 자세를 세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원에는 팔을 돌려 라켓을 뒤로 뺀다. 투에서는 라켓 면과 팔의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뒤 손목을 떨군다. 그리고 날려,에서 허리를 돌려 스윙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는 스쿼트 자세도, 허리를 꼬아 힘을 모으는 것도, 손목에 힘을 푸는 것도, 몸통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도 함께였다.

S와 내가 삐걱대며 자세 연습하는 것을 보더니 안 되겠는지 코치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작은 아령을 들고 나왔다.

"한 명씩 내 앞에 서."

투박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코치의 말투에 우리는 제법 군기가 들었다. 내가 먼저 코치 앞에 서서 아령을 건네받았다. 코치는 내게 스쿼트 자세를 시키더니 팔을 앞으로 뻗어 아령을 들게 했다. 그러더니 코치는 아령을 잡은 내 손을 옆으로 밀쳤다. 그와 동시에 내 몸통은 오른쪽으로 뒤틀렸고, 내장이 꼬인 듯 숨통이 막혔다. 코치는 내 몸이 돌아가자마자 말했다.

"돌아와"

나는 즉시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코치는 내 몸을 왼쪽, 오른쪽 골고루 비틀었다. 한 동안 나는 몸통을 쥐어짜는 동작을 반복했다.

잠시 후 코치는 눈치울 때나 쓰는 넉가래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라켓을 내려놓고 넉가래를 들라고 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걸로 연습을 해요?"

코치는 넉가래가 라켓보다 공기 닿는 면이 넓어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코치가 시키는 대로 넉가래를 들고 자세 연습을 했다. 그런데 컨테이너 박스 창문으로 S가 눈에 들어왔다. 넉가래를 들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 연습을 하는 S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S는 넉가래를 휘두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웃지 말고. 원, 투, 날려!"

코치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한 동안 허공에 넉가래를 휘두르다 보니 시계는 벌써 8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공을 주우며 운동을 마치려 하는데 코치는 우리더러 이번엔 스텝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스텝 연습이란 빠른 스텝으로 의자 주변을 도는 것이었다.

S와 나는 코치가 시키는 대로 두 손으로 라켓을 잡고 어깨 높이로 든 다음 무릎을 구부린 채 무게 중심을 조금 앞으로 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의자 주변을 종종거리며 빠른 스텝으로 돌았다. 나는 컴컴한 컨테이너 박스 창문으로 비치는 S의 모습에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S는 어정쩡한 스텝으로 또 땀을 뻘뻘 흘리며 똥 마려운 개처럼 의자 주변을 뱅뱅 돌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오늘 S와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리바리한 상태로 첫 레슨을 마쳤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던 S는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득 나는 어렸을 때부터 테니스를 배우던 P가 생각났다. P의 집안은 제법 유복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준선수급 실력이 됐다.

그때만 해도 나는 테니스를 귀족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P처럼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만 칠 수 있는, 나는 꿈도 못 꾸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S도 일까. 그런 P를 보고 돈 많은 부모를 만나서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S에게 말했다.

"열심히 배워서 내가 그런 부모 되면 돼."

그건 다짐과 같은 말이었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며 땀을 식혔다. S는 내게 드라이브 스루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차가 없는 난, 당연히 없었다. S는 차를 몰고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창문으로 커피를 전해줬다.

테니스 레슨을 마치고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먹는 하루라니.

'갓생'을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꽤 잘나고 부지런한 삶 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이젠 틀린 말 같다. 용인시 처인구의 한 촌 동네에서도 이렇게 좋은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S는 나를 집 앞에 내려줬다. 그리고는 가게 포스 마감을 해야 한다며 차를 돌렸다. 가게로 가는 S를 향해 나는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며 인사했다. S의 자동차 바퀴소리가 조용한 촌 동네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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