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탑>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다.
아마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이유는 거의 이렇지 않을까.
거슬리지 않는 대사, 인간사 찌질함을 거침없이 찔러대는 장면들, 그냥 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틀어 놓고 껄껄대기 좋은 영화….
이번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는 누구나 안과 밖이 다르다는 것. 밖에서의 나도 나고 안에서의 나도 나라는 것. 어쩌면 밖에서의 모습이 진짜 나인데 집 안에서의 나만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도 글을 쓰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조금 교양 있는 척을 하곤 한다. 말도 조금 느려지고 단어를 골라 쓰기도 하면서. 그러나 동네 친구들을 만날 때면 다르다. 아 졸라 웃기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런데 그중 어느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모르겠었는데 오늘은 알 것 같다. 둘 다 나다. 사실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어떤 여배우는 과거 문신을 한 채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을 보고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라고 말했다. 만약 나라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어제는 술을 마시고 싶다가 오늘은 차를 마시고 싶기도, 글을 쓰고 싶다가 테니스를 치고 싶기도, 낯을 가리다 안 가리기도….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내 모습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진짜 내 모습을 찾아 헤맸나.
사람은 모두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니 그중 하나의 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여러 가지 얼굴 모두 당신 본인이라는 것. 나도 타인도.
오늘 홍상수 감독의 토로 또는 자기 위로에 나도 덩달아 속이 시원하다. 이젠 나도 나의 여러 가지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