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랑해진다는 건 뭘까. 책을 읽다 마음이 말랑해진 것을 느꼈다.
오후 세시. 어김없이 손님이 뜸해지는 시간이었다. 탈의실에서 가방을 들고 나와 책을 꺼냈다. 김신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였다. 한 단락을 읽을 때마다 책 귀퉁이를 접을 일이 많아졌다. 어쩔 때는 한 페이지당 한 번 꼴로 책 귀퉁이를 접기도 했다. 나는 긴 시간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됐다. 한 단락이 끝나면 다음 단락이 궁금해 곧바로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술술 읽히는 책을 마주하고 싶었는데, 그런 책을 드디어 만난 것 같았다.
책에서는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에 대해 말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을 하는 시간. 그런 것은 대부분 하찮지만 중요한 것들일 때가 많다. 맛있는 음식 먹기, 일기 쓰기, 운동하기, 차 내려 마시기 같은 것들처럼 말이다. 귀찮지만 하고 나면 좋은 것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를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간이다. 108p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눈으로는 구름 멍을, 귀로는 파도 멍을 하는 시간. 이런 걸 다 누려도 되나 싶은 동시에, 내가 이 중요한 순간 안에 온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 때 나는 어김없이 기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멍의 시간을 갖는 것뿐인데 왜 잘 산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귀찮아도 나에게 이런 시간을 줘야 한다. 그 시간들이 모여 나를 ‘잘’ 살게 만들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지만 어째서 시간이 없는 걸까. 일하느라, 야근하느라, 회식하느라 집에 돌아와 보면 씻고 자야 할 시간이었던 적, 직장인이었다면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160p를 읽다가 소름이 끼쳤다.
“그즈음엔 ‘다들 이렇게 살아’의 ‘다들’은 무사한 건지 자주 궁금했다. 바쁘시죠,라는 말로 안부를 묻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모두가 입에 달고 사는 세상. 야근 후 하루가 또 이렇게 가버렸다는 헛헛한 맘으로 한 시간 뒤면 문을 닫는 호프집 빈자리에 앉아 10분에 한 잔씩 마셔야 해요, 같은 말이나 나누며 생맥주를 들이킬 때 우린 한숨을 쉬듯 때론 화를 내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뭔가 이 상하지 않아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다 큰 어른들이 길 잃은 얼굴을 하고서 망연해질 때 우리는 서로의 거울 같았다.”
퇴근 후 10분에 한 잔씩 마셔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억울한데 마시긴 해야겠는 그런 기분.
결국 글쓴이는 ‘시간이 없어서’ 퇴사를 결정한다. 결정적 이유는 170p에 나와있다.
“내 일은 나 대신 누군가 할 수 있어도, 내 삶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 대체 가능한 노 동자인 내가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곳은 오직 내 삶의 자리라는 것.”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행동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지 어렴풋이 나는 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시간을 낭비한 것 아닐까, 다른 업계로 가면 경력도 없어질 텐데. 나 또한 그런 생각 때문에 퇴사를 고민했지만 결국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었다.
사직이라는 용기를 내기까지 수많은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지혜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자는 것이었다. 192p를 보면 내가 말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은 후배가 걱정한 대로 ‘허튼’ 시간은 아니었던 셈이다. 비록 원하던 일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과 실력이 내 안에 남아서 삶의 어느 때든 적절하게 도움이 되어줄 테니까.”
퇴사 후 집 앞 빵집에서 잠깐 일하는다는 것이 눌러앉게 됐다. 자전거를 타면 출퇴근 시간은 5분이 채 안 되고 당연히 교통비와 식비는 들지 않는다는 것, 퇴근하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이것이 내가 눌러앉게 된 간단한 이유다.
동네 빵집도 한가롭지만은 않았다. 사무직일 땐 몰랐지만 현장에서 손님과 대면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어떤 할아버지가 알바생과 나를 착각하고 무언가를 잘못 알려줬다며 내게 고함을 지른 적이 있다. 사실 전 회사에서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을 몇몇 봐왔던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대면이냐 비대면이냐 하는 차이였는데, 확실히 대면하는 것이 더 힘들긴 했다. 알바생이 했는지 내가 했는지는 손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아침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억울해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사과했다.
“아이고. 아침부터 너무 성내지 마셔요. 힘 빠져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는 피식 웃고 가게를 나갔다. 193p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경험은 대답이 된다는 걸. 인터넷에서 찾아 외우는 모범 답안이 아니라, 단단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나만의 대답이.”
그날 내가 너스레를 떨던 것처럼 경험은 삶의 순간순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딸랑,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을 때였다. 손님 두 명이 들어왔다.
“커피 한 잔 주세요.”
원칙은 1인 1잔 주문이지만 지켜보고 있는 사장님도 없고 한가하기도 해서 내 마음대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머신에서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트레이 위에 빈 잔 하나를 더 챙겼다. 따듯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빈 잔 하나를 손님 테이블에 내려놓고 돌아왔다. 가벽 너머로 손님이 목소리가 들렸다.
“한 잔 시켰는데 컵이 두 개네. 자상하기도 하여라.”
마음이 말랑해진다는 건 아마도 자상해지는 일 아닐까. 기꺼이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는, 조금 더 마음이 유연해진 상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말랑해질 때가 종종 있다. 데이트를 할 때, 여행을 할 때, 산책을 할 때도 마음이 말랑 해지곤 한다. 하지만 매일이 여행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책을 집어 든다. 되도록이면 자주 말랑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유연한 마음으로 어디든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