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유령이 미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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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터: https://brunch.co.kr/@sisunwoo/19
재니스가 처음 그 형체들을 본 건 지금으로부터 한 달 하고 2주 전, 부두가 설치된 항구 맞은편 어느 골목에서였다. 옆에 있던 제 친구 커스틴 홀이 아니었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레이크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 커스틴 홀에 대해 조금 말해보자면, 재니스는 그녀를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재니스는 부모님의 염려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입학한 경우였는데, 커스틴 역시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재니스와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둘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재니스가 본 커스틴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무리에 어려움 없이 섞였고, 퍽 유쾌한 편은 아니었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꽤 괜찮은 대화가 이어지는 친구였다. 크게 재미있지도 신선하지도 않았지만, 재니스는 이상하게 그녀와의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졸업한 후에는 꽤 오랫동안 커스틴을 볼 수 없었다. 8년간 연락이 끊어지게 된 원인으로는 다양한 이유가 관여했다. 직장을 얻고, 거처를 옮기고, 번호를 바꿨다. 커스틴에게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만나지 못할 경우의 수는 배로 늘어났다.
재니스가 직장을 다니며 하루하루 메말라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가 식은 줄도 모르고 머릿속이 생각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때, 눈앞으로 낯익은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익숙한 대학 로고 열쇠고리가 달린 익숙한 자주색 배낭. 기억보다 더 닳아져 있었지만, 재니스는 카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커스틴?”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을 붙잡았다. 그녀의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문이 그제야 딸랑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재니스에게 팔을 잡힌 여자가 서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낡은 배낭처럼 버석한 입술을 가진 여자. 커스틴 홀이 맞았다.
“재니스.”
커스틴은 거처는 바꿨지만 번호를 바꾸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연락이 닿지 못한 이유 수백 가지가 얼굴에 새겨져 있는 듯했다.
재니스는 그날 이후로 주기적으로 커스틴을 만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다시 만난 커스틴은 많이 변해있었지만, 그럼에도 재니스는 이상하게 그녀와의 관계가 좋았다.
유령을 처음 본 날은 커스틴과 재회한 지 1년쯤 되는 날이었다. 그 늦여름의 끝자락에서 커스틴은 자신이 지내고 있는 곳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재니스는 커스틴이 다시 만난 지 1년 만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재니스는 그때까지 커스틴이 자신처럼 작은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스틴이 지내는 곳은 차를 타고 1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만날 때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였을 커스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커스틴은 그녀를 위스콘신 어느 항구의 끄트머리로 데려갔다. 둘은 차에서 내려 작은 모텔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모텔은 빛바랜 바다 냄새가 배어있는 외진 곳에 있었다.
“마리아, 잠깐만 같이 들어갔다가 나올 거예요.”
커스틴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히스패닉계 여주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여주인은 카운터 한쪽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재니스는 커스틴을 따라 장기 투숙용 객실로 향하면서 텔레비전에서 새어 나오는 기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4층짜리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현재까지 총 아홉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 소방국과 경찰국에서 구조 작업을 위해 현장을 통제 중이며,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재니스는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거래처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자의 말 뒤에 구시렁거리는 여주인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제기랄, 또 저 근처야. 점점 심해지고 있어.”
재니스 역시 최근 발생한 이상 현상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택이나 저층 건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방금 발생한 사건처럼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작은 도시는 혼란에 빠졌지만, 대책 위원회가 설립되었으니 일단은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귀중품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들은 각자의 몫이었다.
반면, 떠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니스의 부모님 역시, 같이 위스콘신 밖으로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재니스는 이를 거절했으나, 그녀의 부모님은 이번 달에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음 달에 떠나겠다고 말했다. 재니스는 오늘 더 큰 사건이 발생했으니, 부모님이 떠나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커스틴에게 해당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려다가, 그녀의 힘 없이 말려 들어간 등과 푸석해진 갈색 머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커스틴은 아직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커스틴의 방에서는 근 1년간 나눈 어떤 말보다 더 영양가 있는 대화가 오갔다. 여태 기사를 읽는 것처럼 감정 없는 대답만 듣는 느낌이었다면, 이젠 퍽 유쾌한 편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던 것이다.
“난 여기서 지내. 아이를 떠나보낸 곳에서 그나마 먼 곳이거든. 고향을 아주 떠날 용기는 없어서….”
재니스는 그제야 커스틴이 동네를 떠나 1시간이나 떨어진 이곳에 정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커스틴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빛도 잘 들어오고 아늑한 곳이야.”
커스틴은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가졌다. 남자 친구는 결혼 생각이 없다며 모진 말을 내뱉고 자취를 감추었고, 결국 그녀는 홀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렇지만 커스틴은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몸이 따라주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4년도 안 되어 아이를 잃었다. 의료 사고였다. 자세한 이유를 묻자, 커스틴이 이상 반응(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몸을 떨다가 ‘치과’라는 단어와 함께 침을 뚝 흘렸다)을 보였기 때문에 재니스는 더 묻지 못했다.
재니스는 그녀를 다독이며 상황을 돌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텔에서 기본으로 둔 몇 없는 가구와 벽지에 낡고 습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벽 한편에 기대어 놓은 커스틴의 낡은 배낭과 원형 탁자 위의 식기구를 제외하곤 물건이 거의 없었다. 재니스가 빛이 더 들어오도록 창문 일부를 가리고 있던 하얀 커튼을 걷어냈다.
“방 안이 깨끗하네.”
커스틴이 재니스를 쳐다보았다.
“가져오지 않았으니까. 무언가를 가진다는 건 결국 잃겠다는 것과 똑같거든.”
재니스와 커스틴은 노을이 지려 할 때쯤 객실에서 나왔다. 여주인은 자리에 없었고, 제방을 따라 걷다가 건물들이 모여있는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둘은 재니스의 차를 주차했던 곳을 기억하지 못해 헤매다가 한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다.
골목에는 동네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건지, 심지가 다 타버린 폭죽 잔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척이는 폭죽 껍데기는 매우 오래되어 보였다. 순간 재니스는 골목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놀던 여자아이가 자라고 자라, 방금 지나쳐온 모텔의 여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골목에 늘어선 폐건물들에선 왠지 음산한 기운이 돌았다. 재니스는 발에 채는 폭죽을 옆으로 밀어놓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쪽이었지 커스틴?”
골목을 벗어난 재니스가 옆을 돌아봤지만, 커스틴은 옆은커녕 근처에도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다. 커스틴은 아직 골목 한가운데에 서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가 있어?”
커스틴의 시선을 따라가자 골목 어귀에 있는 건물에 닿았다. 정확하게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던 폐건물들 중 하나의 텅 빈 벽을 보고 있었다. 커스틴이 재니스를 돌아보았다.
“또 저 사람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퍼포먼스라도 하나 봐.”
그녀의 말에 재니스는 등줄기가 싸해졌다. 그전까지 커스틴은 위태로울지언정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 소름 돋게 조용한 골목에는 자신과 커스틴, 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골목을 둘러봐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커스틴, 어디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재니스의 물음에 커스틴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저기 저 사람들. 이상한 분장을 하고 벽을 밀고 있잖아.”
이번에는 재니스의 얼굴에 같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커스틴은 이런 이야기로 장난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이 진짜 있거나, 그녀가 드디어 미쳤거나. 커스틴에게는 미안했지만, 재니스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벽면이 어두워서 헛것이 보이는 거야. 가자.”
“잠깐만!”
그러나 커스틴이 재니스를 잡아 세웠다. 커스틴은 그녀를 잡아둔 채로 이쪽저쪽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마치 어떤 알맞은 위치를 찾으려는 듯이.
“잠깐만… 가만히 있어봐.”
그러더니 자신이 마지막에 서 있던 위치로 재니스를 끌어당겼다. 커다란 두 건물 사이, 타오르는 석양빛이 밀려 들어오는 곳으로.
“지금은 어때?”
재니스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다가 골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극도로 병원을 꺼리는 커스틴을 어떻게 병원에 데려갈지 고민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더 잘 보여.”
커스틴은 다시 벽면을 가리켰다. 눈이 멀듯 부서지는 노을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재니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재니스의 눈에는 이상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 다르게 아지랑이 같은 실루엣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 모인 덩어리 같았는데, 계속 보고 있자 커스틴의 말처럼 벽을 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여.… 커스틴, 저게 뭐야?”
커스틴은 일순간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는 자신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추락의 속도를 빨리한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였다. 재니스는 8층짜리 폐건물에 어둠이 들어앉을 때까지 커스틴을 따라 그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뒤늦게 꺼낸 핸드폰 카메라에는 빛이 번지는 모습 외에는 어떠한 형태도 담기지 않았다. 커스틴 역시 사진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커스틴은 그들의 뚜렷한 모습이 보인다고 했으나 재니스는 이를 믿었고, 재니스는 그들의 흐릿한 형태만 보인다고 했으나 커스틴은 그것을 믿었다. 서로의 눈에 보이는 건 달랐지만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 그들을 본 건 환상처럼 몽롱했고, 금기를 어긴 것처럼 껄끄러웠다.
늦은 저녁, 재니스의 차에 다다랐을 때 커스틴이 말했다.
“지난번에도 본 적 있어. 폰드 두 락에서.”
“똑같은 모습을?”
커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니스가 그 기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스틴이 말했다.
“그런데 그곳, 얼마 전에 무너졌더라고. 우연일 테지만.”
그날은 또 다른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사흘 전이었다. 재니스 역시 그때까진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흘 후, 8층짜리 폐건물이 무너졌다는 속보를 본 재니스는 대책 위원회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