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분모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유령이 미는 도시≫

by 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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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터: https://brunch.co.kr/@sisunwoo/19

[2] 믿기 힘든 것에 대한 목격: https://brunch.co.kr/@sisunwoo/20



[3] 공통분모



이른 저녁이었지만, 최소한의 불만 켜놓은 병원 복도는 한밤처럼 어두웠다. 재니스는 위원회로부터 받은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멀리 안내 데스크가 보였다. 앉아 있는 직원은 이제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맥. 커스틴 홀 면회 왔어요.”


“재니스, 잘 지내시죠? 한 시간 반이니 시간만 엄수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반입 금지 물품은 없는 거죠?”


맥이 장난기 섞인 눈으로 쳐다봤고, 재니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음, 아침에 잼 발라 먹던 나이프를 가방에 넣은 것 같긴 한데.”


맥은 피식 웃고는 들어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면을 튼 지 꽤 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커스틴을 입원시킨 건 경찰이었다. 커스틴이 살고 있는 모텔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커스틴은 기어코 알약 한 통을 다 털어먹었다. 그런 그녀를 모텔 여주인 마리아가 발견했고(마리아는 꼬박꼬박 투숙료를 내던 그녀가 안 보여 떠난 줄 알았고, 정리하러 간 객실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는 커스틴을 발견했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여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커스틴은 이후 일주일가량 깨어나지 못하다가 의식을 되찾았다. 자살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판단에 정신 병원 입원이 요구되었고, 보호자를 자청한 재니스가 오가기 쉬운 병원으로 커스틴을 옮기게 되었다.


“잘 지냈어?”


재니스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았다.


“면담하고, 약 먹고, 자려던 중이었지.”


커스틴은 약기운 때문에 느릿느릿 말했다.


“잠깐만 있다가 갈게.”


2인실 병실에는 커스틴 하나였다. 위험한 장치를 전부 제거한 병실은 밋밋했는데, 맞은편 침대마저 비어 있어서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커스틴은 이삿짐에서 떨어져 나온 곰 인형처럼 침대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됐어?”


그 일. 커스틴의 물음에 재니스는 마지막으로 커스틴을 봤을 때, 곧 위원회를 만나러 간다고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재니스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기로 했다.


“안 믿어.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안건을 보류로 처리하더라고.”


“그래.”


커스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기대 하나 안 했던 것처럼 말했다. 재니스는 그 모습에 불안해졌다. 재니스는 아직 위원회 앞에 들고 있는 창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말을 믿게 할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뭐라도 하며 계속 들이댈 생각이었다. 하지만 커스틴의 반응에 들고 있던 창이 포크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재니스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커스틴의 손을 붙잡았다.


“그렇지만 커스틴, 네가 본 것을 나도 봤잖아. 그들은 분명 존재했어.”


“존재했지.”


“우리는 알고 있잖아. 게다가 넌 두 번이나 봤다고 했어. 뚜렷하게! 우리가 이 진실을 알고도 묵인한다면, 이 도시는 그 유령들한테 잡아먹히고 말 거야.”


재니스는 여전히 감흥 없는 커스틴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우린 위원회의 도움이 필요해. 유령들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단 그들의 존재를 이해시키고,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알아내도록 조사를 요청해야 해.”


커스틴, 그렇지? 재니스가 한 번 더 이름을 불렀지만, 커스틴은 미동도 없었다. 충혈된 눈 위에 바짝 서 있던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침대 등받이에 기대있던 커스틴은 재니스를 보지 않고 말했다.


“재니스, 넌 이 도시가 좋아?”


갑작스러운 물음에 말문이 막힌 재니스가 커스틴을 바라보았다. 커스틴은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고 내뱉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


병실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도시가 좋냐고? 재니스는 무너지는 도시 속에서 자신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이곳이 끝내주게 좋다는 생각 또한 해본 적 없다. 재니스가 이곳에 있으려는 이유는… 그냥 그녀가 이곳에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그녀는 환경의 변화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었다.


“커스틴, 너도 알지? 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되는 거. 아빠를 따라 처음 위스콘신으로 이주해 왔을 때도 어찌나 애를 먹었는지.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학교에도 못 갔어. 부모님이 이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라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거야. 그때 날 돌보느라 꽤나 고생하셨거든.”


재니스가 말했다.


“3년 전엔 바로 옆에 있는 주로 여행을 갔었는데, 이틀 내내 먹은 걸 토했어. 이후로 다신 여행 가방을 쌀 일이 없었지. 부모님은 지난주에 떠나셨는데, 나는 혼자 남았어. 도시가 더 무너지고 폐허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뭐라도 해보려는 거야. 적어도 너를 통해 무언가 알게 되었으니까.”


재니스는 여전히 미동 없는 커스틴의 등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이유는 없어. 그뿐이야.”


재니스는 그만 일어나려고 했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는 커스틴에게 하고 싶은 얘기도, 물어보고 싶은 얘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커스틴을 들쑤신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할수록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스틴 역시 원치 않게 그들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가엾게도.


그때 커스틴을 감싼 얇은 이불이 작게 흔들렸다.


“왜 나한테는 그들이 보일까?”


재니스가 일으키려던 몸을 도로 물렸다. 잠시 후 커스틴이 말했다.


“언젠가 이 세상이 무너지길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일까?”


재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기도는 누구나 한 번쯤 하잖아.”


그렇지만 유령이 보이고, 건물들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이 세상에서 뭐든 속단할 필요는 없었다. 커스틴의 기도가 무언가를 자극해 그들을 볼 수 있는 이상 상태를 발화시킨 걸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장 밝힐 순 없어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게 무언가 내재해 있을 수도 있어.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너뿐일 테니까. 아마도?”


말하고 보니 재니스 역시 확신할 수 없어 의문을 덧붙였다. 재니스의 말에 커스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몰라. 많은 사람 중에 그들을 알아챈 건 나뿐이었어.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어.”


“처음이라면….”


재니스는 지난번 커스틴으로부터 어렴풋이 들었던 말을 기억했다. 커스틴은 항구 맞은편 건물 이전에 폰드 두 락에서 그들을 보았다고 했다.


“아이가 있는 공동묘지에 다녀오던 날이 가장 처음이었어.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고 근방을 돌아다니고 있었지. 묘지에서 조금 벗어나면 금방 번화한 거리가 나왔거든.”


커스틴은 몸을 뒤척여 천장을 보며 자신이 걸었던 경로를 그려내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광장이 나왔고,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들이 그 조형물을 밀고 있었어. 밀리지는 않았으니 짚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분명 힘을 주어 밀어내고 있었지.”


“조형물이라면… 텔레비전이 쌓여있는 7미터짜리 조형물을 말하는 거야?”


그곳은 지난 4월에 무너졌다. 이상 현상의 첫 시작과도 같았다. 위원회를 만나기 전 조사한 정보로 알고 있었다.


“맞아. 애 아빠가 거기서 사진을 많이 찍어줬었지. 텔레비전에 불이 들어오면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고 말하면서. 아이도 거기를 좋아했어서 가는 길에 한 번 지나치려던 건데… 미안해, 괜한 얘기를.”


재니스는 잘게 떨리는 커스틴의 손을 잡아주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커스틴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 그렇게나 해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어.”


“해괴한 모습?”


“응. 내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똑같아.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부가 주름지고, 곳곳이 썩어 문드러져 거뭇거뭇하지. 내내 화마에 시달린 것처럼 낡은 옷을 걸치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어. 하지만 그들을 보고 비명을 지른 건 나밖에 없었어. 다들 날 이상하게 쳐다보고 지나갔지.”


“마치 내가 못 보고 골목을 지나친 것처럼.”


재니스의 말에 커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지만 그냥 넘기는 줄 알았어. 너와 같이 목격하고 나서야, 그들이 내게만 제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 이후로는… 한 번 더 본 게 마지막이야.”


재니스는 마지막 한 번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었다.


“한 번 더 있었다고? 그건 왜 말하지 않았어?”


“나도 모르겠어. 약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었나 봐.”


“다그치려던 건 아니야, 그냥… 우리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희망적인 얘기잖아. 그건 언제였어?”


“한 달 조금 안 되었을 거야. 9월 중순이 되기 전이었어.”


재니스의 머릿속에 한 달 전후로 있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커스틴을 찾아갔던 일, 그 후로 일주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한 커스틴을 퇴근 후 두 번 정도 방문했던 일과 의식을 되찾은 커스틴이 이곳으로 옮겨졌을 때 그녀를 찾아왔던 일. 홀로 위원회에 제보 신청서를 넣으며 정신없이 보낸 시기였다.


“다른 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넘어오는 길에 우연히 본 거야. 신호 대기를 하고 있을 때, 차창 밖으로 그들이 보였어.”


“그곳도 무너졌어?”


“모르겠어. 여기선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아서.”


재니스는 가방을 뒤적여 손에 잡힌 종이를 펼쳤다. 최근 6개월간 폰드 두 락과 근방을 중심으로 붕괴된 건축물 중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건축물 목록이었다. 종이에는 약 서른 개의 건물명과 주소가 적혀있었고, 재니스는 이전 병원과 현재 병원 사이에 위치한 주소들을 골라냈다. 그녀는 쿵쿵 뛰는 심장을 느끼며 손가락으로 짚은 주소를 커스틴에게 보여줬다. 만약 이번에도 맞으면, 커스틴이 유령을 본 곳이 붕괴된 확률은 100%라는 뜻이었다.


“혹시 이쯤일까?”


“주소만으로는… 확실하게 모르겠어.”


재니스는 종이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지도 앱에 주소를 적어 넣으려다가, 검색 창에 해당 건물의 건물명과 붕괴라는 단어를 넣어 검색했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고(재니스는 저주받은 도시, 악몽의 발발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을 휙휙 넘겼다), 그중 붕괴 이전의 모습이 사진에 잘 담겨있는 기사를 눌렀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을 커스틴에게 내밀었다.


“여기.”


커스틴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맞아.”


예상치 못한 전개에 그녀 역시 놀란 듯했다. 고개를 끄덕인 재니스는 커스틴이 옆에 있는 끔찍한 사진들을 볼세라 다시 핸드폰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확실하다면….


“커스틴, 네가 그들을 봤던 곳은 모두 무너졌어.”


그전까지는 확신이 아니라, 확신에 기울어져 있는 의심에 가까웠다. 자세한 파악을 위해서는 조사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위원회를 찾아갔다. 하지만 ‘커스틴이 그들을 목격한 세 장소는 모두 붕괴되었다.’는 사실이 추가되었다. 그들을 붕괴의 전조로 볼 수 있다면, 그들을 볼 수 있는 커스틴은 붕괴될 건물을 예언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인과관계만 확실하다면, 그들이 누구이며 그 미지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는 이상 현상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중 일에 불과했다. 고작 세 장소로는 표본이 부족하다며 쫓아낼 수 있겠으나, 위원회에 대한 여론도 나빠지고 있는 판에 그들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재니스는 지금부터는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느라 시간을 쓰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떤 식으로?


“게다가 붕괴된 시간을 보면, 네가 그들을 목격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무너졌어.”


커스틴이 묘지 근처에서 그들을 목격한 지 나흘, 항구 건너편 골목에서 사흘 그리고 병원을 옮기던 중 목격한 곳에서 이틀도 안 되어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그럼 이런 식의 접근은 어떨까? 커스틴이 앞으로 붕괴가 벌어질 장소를 예언하고, 재니스는 그것을 위원회에 전달한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곳에서 붕괴가 일어나면, 그들은 곧바로 관심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신 병원에 입원한 커스틴이 무슨 수로 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커스틴은 아직 외출이 불가했고, 설령 가능하다 한들 찾고자 하는 의지나 힘도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재니스 자신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성가시고 시간이 들었지만. 그들이 있을 만한 장소가 어딘지 추려낼 수만 있다면, 이후로는 자신이 커스틴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붕괴될 만한 건축물을 추려낼 방법이 있을까? 여태 붕괴된 건축물들의 공통점을 커스틴이 찾을 수 있다면.


“커스틴, 이건 지난 6개월간 붕괴된 구조물들의 목록이야. 네가 보기에 이곳들의 공통점이 있어?”


재니스는 커스틴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커스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등받이에 기댔다. 그녀는 종이를 받아 들고 주소들의 사진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재니스는 핸드폰으로 붕괴 전 구조물들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마침내 커스틴이 가장 아래까지 다 봤을 때, 그녀는 혼돈에 빠져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류 판매점, 주유소, 로저스 농장, 휴게소 옆 데니스 레스토랑, 이 네 군데를 제외하곤 다 아는 곳이야.”


재니스는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녀 역시 20년 넘게 이 도시에 살았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이중 절반도 알지 못했다. 커스틴이 재니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순히 위치를 아는 정도가 아니야. 대부분 자주 갔거나, 아주 잘 알고 있는 곳이야.”


재니스는 무너진 어느 주택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주택도?”


커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거긴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여자애가 살던 곳이었어.”


재니스는 커스틴이 아는 사람이라 걱정할까 봐, 조사로 알게 된 내용을 빠르게 덧붙였다.


“모두 집을 비운 상태여서 사상자는 없었어.”


“그래.”


그러나 재니스의 말에 커스틴은 안심하기보단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어 했다. 재니스는 알듯 말듯 어지럽혀진 머릿속에서 다음 말을 끄집어냈다.


“커스틴, 이 도시에 살면서 네가 자주 갔던 장소들을 알려줄 수 있어? 네가 보기에 이 목록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곳은 모두.”


목록을 작성하는 내내 커스틴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재니스는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모든 것은 이 괴상한 현상을 종결시키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맥, 저 가볼게요. 커스틴 좀 잘 부탁해요.”


“네, 걱정 마세요.”


재니스는 손을 들어 인사하다가 자신의 운동화 끈이 풀린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무릎을 굽혀 끈을 묶으며 작은 기척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을 둘러보았다.


“혼자 이곳을 관리하려면 힘들겠어요.”


맥은 보고 있던 차트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보다시피 의사도 환자도,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서 괜찮아요.”


재니스는 바짓단까지 손으로 털어낸 후 일어섰다. 병원에는 CCTV가 많이 달려있었다.


“하긴 CCTV도 많이 설치되어 있으니, 화면으로 확인해도 되겠네요.”


재니스의 말에 맥이 눈썹을 찡그렸다.


“안타깝게도 CCTV는 주요한 곳에 설치된 몇 개만 돌아가요. 전력 소비를 줄이라고 해서. 저기 전등 깜빡이는 거 보이시죠? 지금은 다 이래요. 오히려 문제를 알아차리려면 발로 뛰어야 하죠.”


“위험하진 않을까요?”


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위에서 내려온 지령이라.”


괜찮겠지. 재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은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인가요?”


“글쎄요, 임시 벙커를 짓는다는 얘기도 있고, 지진처럼 곧 멈출지도 모르는 일이고…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아직 남은 건물이 몇 개인데 하면서 위안 삼고 있어요.”


“저랑 비슷하네요.”


“그런데 이 병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홀 씨의 퇴원까지는 괜찮을 거예요.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재니스는 이번엔 정말 맥에게 인사하고 깜빡이는 복도를 벗어났다. 세게 묶은 운동화 끈 만큼이나 그녀의 발걸음도 결연했다. 커스틴이 적어준 스무 개가 넘는 장소를 돌아다니려면(그것도 자신은 커스틴이 아니었으니,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빛을 비추어 보는 성가신 작업과 함께)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계속)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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