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예언, 가설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유령이 미는 도시≫

by 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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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터: https://brunch.co.kr/@sisunwoo/19

[2] 믿기 힘든 것에 대한 목격: https://brunch.co.kr/@sisunwoo/20

[3] 공통분모: https://brunch.co.kr/@sisunwoo/21



[4] 통계, 예언, 가설


재니스는 위원회를 찾아갔다. 오늘이 ‘9번째 원인 규명 및 대책 회의’의 마지막 날이었고, 실질적인 주도자를 포함한 이들을 마주할 수 있는 최적의 날이기도 했다. 10번째 회의를 기다리기에는 건물 여러 개가 더 날아간 뒤일 것이었다.


그녀의 손엔 새로운 주소들이 나열된 종이(그중 한 주소에 수많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와 희한한 빛 번짐이 있는 사진이 들려있었다. 동그라미 친 장소는 지난밤 손전등을 들고 돌아다닌 스무 곳이 넘는 장소 중, 유일하게 수확이 있던 곳이었다. 이미 그저께 한 차례 이상 현상이 발생했으니, 지금 같은 속도라면 하루나 이틀 후에 붕괴가 발발할 곳이었다.


재니스는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핸드폰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회의 참여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최대한 매너를 지키려고 했다. 단 30초라도 벌 수 있으면 되었다. 주소를 읊는 데에는 사실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제기랄!”


하지만 그들은 재니스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추가라도 한 건지 받지 않았다. 재니스는 분명 내내 재수 없게 굴던 청록색 셔츠의 소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3층에 뛰쳐들어가고 싶었지만, 건물을 지키는 장정이 1층만 해도 다섯이었다. 이곳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쫓겨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그녀는 1인용 소파에 엉덩이만 겨우 걸치고 핸드폰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계단을 번갈아 보았다.


한참 후 그들이 내려오는 것을 본 재니스는 중앙에 앉아 있던 위원장 앞으로 달려갔다. 불과 몇십 초 전에 확인한 뉴스에는 아직 해당 건물이 무너졌다는 속보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말해야 했다.


“증명이 필요하다고 했죠? 다음 무너질 곳이 어딘지 알아냈어요.”


위원장의 옆에 청록색 셔츠를 입었던(지금은 분홍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딱 붙어있는 바람에 재니스는 조금 거리를 두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또 보네요. 폭탄을 설치해 놓고 온 건 아니죠?”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비아냥대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병력을 요청해서 확인해 보세요. 여기, 폰드 두 락 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6층짜리 쌍둥이 건물이에요.”


재니스는 들고 있던 사진을 내밀었다.


“건물 하나는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비어 있지만, 다른 건물의 1층에선 보트 부품을 팔고 있어요. 2층과 3층은 모두 사무실로 사용 중이고요. 이상 현상은 가속되고 있으니, 이틀도 되지 않아 무너질 거예요.”


재니스의 말에 위원장이 걸음을 늦췄다.


“근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들은 제가 보는 방식대로 보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 일이 일어난다면 지금 제 말이 사실의 근거가 되겠지요. 병력을 배치해서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24시간 감시한다고 해도 결국 그곳은 무너질 겁니다.”


멀리서 검은 옷을 입은 장정 둘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두 장정에게 분홍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이 사람 못 오게 막아주시죠. 아무리 봐도 부두교에 미친 자가 분명해요.”


“웃기고 있네. 내 연락처 차단이나 풀 준비 하시지.”


“허.”


재니스가 스스로 나가겠다고 자신을 붙든 경비원에게서 팔을 빼내고 있을 때, 뒤따라오던 헨리 로저스와 눈을 마주쳤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지 노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재니스는 그가 이 얘기를 듣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사라져가는 헨리 로저스의 뒤통수에 소리쳤다.


“로저스 씨, 다음 장소는 쌍둥이 건물이에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저와 커스틴은 알 수 있어요. 기억해 주세요.”


노인은 재니스를 돌아보고 짧게 목례했고, 재니스 역시 그에게 목례했다.




20시간이 지난 뒤 시끄러운 경보음이 재니스의 핸드폰을 울렸고, 창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녀가 잠도 자지 않고 켜놓은 뉴스에선 6층짜리 쌍둥이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도했다. 재니스는 자신이 말한 장소에 이상 현상이 발생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끔찍한 광경에 심장이 달음박질치고 구역질이 밀려왔다. 다행이라니. 그녀가 속을 게우고 왔을 때는 문자로 약속 장소와 시간이 잡혀있었다. 발신자는 위원회였다.


재니스는 그들을 만나기 전에 커스틴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진전되고 있고,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재니스는 레이크 정신 병원의 안내 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


“레이크 정신 병원입니다.”


전화 너머로 맥의 목소리가 들렸다.


“맥, 재니스 리예요. 커스틴 좀 바꿔줄 수 있나요?”


“오늘 커스틴을 찾는 사람이 많네요.”


“네? 누가 또 찾았어요?”


재니스의 물음에 맥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홀 환자 언제 입원했냐고 연락이 와서 대답한 게 다였어요. 바꿔 줄게요.”


재니스는 전화를 건 게 위원회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발생한 이상 현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기 시작하면서, 지난번 회의에서 말한 커스틴 얘기가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전화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화기 너머로 맥과 커스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커스틴이 전화받았다.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재니스의 이름을 짧게 불렀다.


“커스틴, 네가 알려준 곳 중 하나가 무너졌어. 어젠 내 말을 듣지도 않았는데, 세 시간 후에 그들을 만나기로 했어.”


재니스의 말에 커스틴이 잠시 침묵했다.


“무너지는 족족 나와 관련 있는 장소라니… 믿기지 않아.”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목소리에 드러났다.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곧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커스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커스틴과 관련된 장소에 그들이 나타나면, 그곳은 무너진다.’라는 가설이 네 번째 들어맞았다. 재니스는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런데 커스틴… 궁금한 게 있어.”


커스틴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재니스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네게 저 장소들은 어떤 곳이야?”


재니스는 그 장소들이 단순히 그녀가 자주 방문했던 곳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커스틴이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 이 도시에 살면서, 고작 스무 개 남짓한 주소만 더 적어서 주었다는 건 분명 그 장소들만 가지고 있는 일맥상통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곳들은 아주…”


커스틴의 목소리에 숨소리가 많이 섞여 있었다.


“아주 증오스러운 곳이야.”


잠깐이지만 스피커의 작은 구멍 사이사이로 커스틴의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생각만 해도 심장을 후벼파거나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장소들이지.”


재니스는 커스틴을 따라 방문했던 항구 근처 골목을 떠올렸다.


“그때 나와 그들을 봤던 골목 안 건물은? 그곳도 그랬어? 거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잖아.”


커스틴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원래 그곳에 간 이유는 죽기 위해서였어. 그러면 안 됐지만, 이후에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이 찾지 못할 멀리 떨어진 폐건물에서 목을 매달아 죽을 생각이었지. 건물에 들어서려던 찰나, 젊은 아가씨가 뭐 하냐며 다가온 마리아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그랬을 거야.”


재니스는 말문이 막혔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때로는 공백을 없애는 것이 수많은 인파 가운데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람을 찾는 것처럼 어려웠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공백을 먼저 메운 건 커스틴이었다.


“슬프든 증오스럽든 끔찍하든 내내 안 좋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곳들인 것 같아. 네가 전에 보여준 목록 중 한 곳은 의료 사고를 낸 치과가 있던 건물이었고, 다른 곳은 일곱 살 때 고모로부터 유기당한 장소였어. 네가 고등학생 때 날 만났다면, 돌아다니는 소문으로 알았을 거야. 전에 말한 붕괴된 주택에 살았던 여자애가 4년 내내 그 소문을 내며 날 괴롭혔거든.”


커스틴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목소리로 숨을 몰아쉬었다. 재니스는 자신이 다그친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 추상적인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선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원회와의 이야기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뭐든 알고 있어야 했다.


“커스틴,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용기 내어 말해준 것처럼 나도 이 끔찍한 일을 종결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


재니스는 주소가 적힌 종이에 ‘커스틴의 불행한 경험이 있는 곳’이라고 적었다. 그녀는 유난히 길어 보이는 목록에서 시선을 거뒀다.


“여기 있는 장소들이 그랬다는 거지.”


“전에 말한 네 군데는 빼고.”


“응, 주류 판매점, 주유소, 로저스 농장, 휴게소 옆 데니스 레스토랑은 빼두었어.”


재니스의 말에 커스틴이 대답했다.


“네 곳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가본 적도 없어. 게다가 난 로저스 농장에서 나온 로저스 스타 우유가 아니라, 그곳의 라이벌인 헬렌 치즈 농장에서 나온 우유를 먹곤 했어. 그러니 로저스 농장엔 갈 일도, 추억도, 불행도 있을 수가 없다는 거야.”


재니스는 이전보다 나아진 커스틴의 목소리에 일부러 더 활기차게 맞받아쳤다.


“맞아, 어릴 때는 그런 게 중요했잖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쳐다도 보지 않는 것. 그래서 나도 로저스 스타 우유만 먹었지. 우유를 사면 가끔 증정해 주던 배지도 모으고 말이야.”


“너는 그쪽 파였구나.”


커스틴이 작게 웃었다. 그렇지만 재니스는 아까 자신의 불행을 내뱉으며 숨을 몰아쉬던 커스틴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흘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커스틴, 만약 혼자 있는 게 불편하면 잠깐 들렀다가 갈게. 시간은 충분해.”


재니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스틴이 말했다.


“아니야, 여긴 맥도 같이 있잖아. 네 일을 보고 와.”


“그래도 괜찮겠어?”


“응. 그리고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그 말은 어쩌면 재니스가 친구로부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몰랐다. 재니스는 가슴 속에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야, 커스틴. 정말 다행이야.”


“네 말 때문인지 얼마 전부터 도시의 건물 하나하나가 혈관처럼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이 작은 도시가 날 대신해 복수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럼 재니스… 이 도시만큼은 내 편이지 않을까? 내게 상처를 줬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불쌍히 여기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 아닐까? 더 이상 붕괴가 되지 않는 폰드 두 락에서.”


재니스 역시 언젠가부터 커스틴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만난 그날부터. 그 이상한 감정은 자신 역시 이 도시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아니면….


“커스틴, 맥에게 퇴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어. 네가 병원에서 나오면, 한동안 내 집에서 같이 지내보는 게 어때?”


전화 너머로 커스틴이 작게 속삭였다.


“재니스, 고마워. 정말로.”




재니스는 처음 그곳에서 다시 그들을 마주 보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측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쌍둥이 건물이 무너졌더군요.”


말을 꺼낸 건 얼마 전 산더미 같은 자료에 둘러싸였던 여자였다. 지금은 자료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얇은 파일철에서 종이 몇 장을 들추더니 말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 일주일간 건물을 비우도록 지시했거든요. 폭발물 탐지기로 폭탄이 설치된 흔적이 없는 것도 미리 확인했습니다.”


정말 폭탄을 설치했는지 확인했다니. 재니스는 황당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주장에 확실한 근거가 될 거라는 생각에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제가 해당 사실을 알렸을 때는 아무도 들은 체 안 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녀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몇몇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그중엔 청록색 셔츠도 있었다(오늘은 정말로 청록색 셔츠를 입었다). 그때 위원장이 말했다.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번 회의에서 재니스 리 씨가 했던 말들은 내부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더 들어보지 않고 보류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겠습니다.”


재니스는 한 번쯤 우연히 얻어걸렸다고 넘기지 않고, 즉시 만남을 주선해 사과까지 하는 데에는 그들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한몫했다고 생각했다. 그들 역시 스패너로 나사 머리를 끝까지 조이듯 목이 죄어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상으로 서로에게 의미 없는 씨름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위원장이 의자를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건 이 재난을 막는 것입니다. 리 씨는 무엇을 알고 계신지요? 당신 역시 그들을 온전히 볼 수 없지만, 당신의 친구 커스틴 홀은 볼 수 있다고 했었지요. 그녀가 이 일에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재니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상한 것들을 이상하지 않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커스틴이 처음 그들을 목격한 일과 그녀를 따라 자신도 목격한 일, 병원을 옮기던 중에 커스틴 홀로 목격한 일과 그들을 찾아 나선 자신 홀로 목격한 일까지 전부 얘기했다. 설명하는 과정 중에 커스틴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할 때면, ‘그녀에게 예전에 불행한 일이 있었는데…’정도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유령이 나타나는 장소가 커스틴의 불행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럼 이상 현상을 막으려면, 커스틴 홀 씨에게서 불행한 감정을 없애면 된다는 겁니까?”


왼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재니스는 ‘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겨우 억누르고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지요. 누구도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커스틴의 불행한 감정을 잦아들게 만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고요.”


누군가 재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확실한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손전등을 들고, 종이에 적힌 주소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건물에서 내쫓으면 되겠군요.”


그의 말에 또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고스트 버스터즈같네요.”


“아니면 퇴마사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왜, 공포 영화를 보면 퇴마를 하지 않습니까? 주술을 외운다던가.”


이번엔 오른쪽에서.


“세상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이도 있었다.


“귀신에 미친 도시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이미 나지 않았습니까? 젖소 간판에 귀신 들린 도시라고…”


말하던 사람이 퍼뜩 깨달은 듯 말을 멈추고, 헨리 로저스의 눈치를 보았다.


“죄송합니다, 로저스 씨.”


헨리 로저스는 불쾌한 듯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말했다.


“어쨌거나 난 그 귀신이고 유령이고를 싹 없앨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소.”


이쪽저쪽에서 발언하는 사람들 때문에 장내가 술렁이는 사이, 재니스의 우측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그들은 헨리 로저스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로저스 씨는 왜 저렇게 귀신 얘기에 집착하는 걸까요?”


“귀신 때문이겠어? 뭐라도 해결이 되어야, 저주받았다고 소문난 로저스 농장이 악명을 벗고 이미지를 회복할 테니 그렇겠지.”


처음 말한 사람이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하긴, 몇 대째 이어온 사업이 달렸으니, 단순히 건물이 주저앉은 것과 수준이 다르겠네요. 게다가 요새 헬렌 치즈 농장에서 나온 우유가 배로 팔리고 있다는 기사 보셨어요?”


“놀랍지도 않아. 원체 라이벌이라는 게 한 놈이 엎어지면 다른 놈이 그 위로 올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거라지만. 게다가 로저스 씨가 노쇠해서 아들에게 농장을 넘기려던 중에 이 난리가 나는 바람에 일이 다 어그러졌으니… 위원장 대니얼 로저스도 별말은 안 하고 있지만 속이 타들어 가고 있을 거야.”


누군가 흩어진 주의를 집중시키려 책상을 두드리는 바람에 재니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위에서 이를 알게 되면 당장 중단하라고 할 겁니다. 도시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업무 외 시간을 내서 따로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우선은 어떤 것도 발설하지 말고, 재난 발생 예방 차원으로 움직인다고 말하면서 이쪽 선에서 끝내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의 말을 듣던 재니스가 말했다.


“혹시 관련한 전문가를 초빙할 순 없을까요?”


“전문가라면, 전자파 측정기랑 온도계를 들고 다니면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초자연 현상 전문가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청록색 셔츠를 입은 남자였다.


“리 씨, 저희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떤 전문가를 고용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과학자나 초심리학자, 웨이크 씨의 말대로 초자연 현상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고요.”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 벗겨진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한달음에 위원장에게 달려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그 앞에 들이밀고 화면을 넘기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가 위원장과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마이크에 대고 말하지 않았고 거리가 멀었기에 재니스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은 다른 두 위원장과 우측에 앉은 세 사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재니스는 그중 그나마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의 입 모양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 식의… 접근이… 나아 보인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머리 벗겨진 남자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위원장이 마이크를 켜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는데요, 가장 사실에 가까운 가설이 무엇일지 판단하기 위해 리 씨에게 질문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네.”


재니스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들이 가설을 세웠다는 얘기가 그녀의 뒤숭숭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이상 현상 발생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재니스의 대답과 함께 머리 벗겨진 남자가 할 말이 있는지 위원장을 쳐다봤다. 위원장이 허락하는 눈짓을 보내자,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통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6개월 전인 4월에는 한 달에 두 번꼴로 발생했지만, 점차 한 달에 세 번, 한 달에 네 번, 한 달에 다섯 번, 지난 8월에는 한 달에 여섯 번꼴로 몸집을 불렸습니다. 이번 달인 10월은 말일인 현재까지 총 여덟 번 일어났고, 예측한 수치대로 사나흘에 한 번꼴로 붕괴가 발생했지요. 소수의 횟수가 잘못 집계되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늘고 있다는 흐름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남자가 위원장을 향해 손을 뻗어 다시 발언권을 넘기려 했지만, 위원장은 되레 손짓하여 남자가 계속 말하도록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 말했다.


“다만, 지난 달인 9월만큼은 다릅니다. 매우 유의미하게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시점이지요.”


남자가 들고 있는 태블릿과 연결한 건지, 그래프 하나가 프로젝터를 통해 벽 한편에 쏘아졌다. 하루마다 발생한 이상 현상 횟수를 1 혹은 0에 점으로 표시하고, 각 점을 선으로 연결한 선 그래프였다.


재니스는 그가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규칙적으로 솟았다가 내려가길 반복하는 그래프에서, 9월의 일주일가량은 심장 박동이 멎은 것처럼 0의 값으로 일직선으로 꺼져있었다. 그는 해당 그래프에서 일주일하고 하루를 더한 8일 동안을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이 부분입니다. 원래 가속의 흐름이라면, 9월 한 달 동안 총 일곱 번 정도의 이상 현상이 발생해야 했지만, 이 시기에 멈춰 있었기 때문에 다섯 번에 그칠 수 있었지요.”


그 시기는 9월 2일부터 9월 9일까지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지금 저희는 이 시기에 집중하려 합니다. 원래는 현상의 원인을 찾아 뿌리를 뽑으려 했지만, 현재로썬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노선을 틀어 이 잠잠했던 시기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 기간이 다른 날들과 무엇이 달랐는지 파악하려고 합니다.”


9월 2일부터 9월 9일까지. 재니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재니스 리 씨는 계속해서 이 일이 친구 커스틴 홀과 관계가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맞나요?”


그녀는 심문하듯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예, 그럼 약 일주일의 기간 동안 커스틴 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9월 2일… 커스틴은 자살 시도를 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의식 불명으로 일주일 가까이 일어나지 못했고, 이상 현상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커스틴이 의식을 되찾은 날은 9월 9일이었다. 그날 이후 이상 현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리 씨, 혹시 짚이는 게 있으실지요?”


갑자기 들려온 위원장의 말에 재니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커스틴은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요?”


“자세한 건 저도 잘….”


‘재니스, 왜 거짓말을 하지?’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넌 누구보다도 그 시기에 커스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어.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들 역시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아니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재니스는 위원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꼭 주방에서 사탕을 훔쳐먹은 아이를 발견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의식이 없는 상태였겠죠.”


입을 연 건 줄곧 왼쪽에 앉아 있던 위원장, 헨리 로저스의 아들 대니얼 로저스였다.


“일주일 후에 의식을 되찾고 레이크 정신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이상 현상이 다시 시작되었고요. 이미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사항입니다. 리 씨의 말대로 쌍둥이 건물이 무너지고 나서,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커스틴 홀 씨가 정말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부터 확인해 봤거든요.”


재니스는 아까 맥과의 통화에서 자신 말고 커스틴을 찾던 사람이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대니얼 로저스였다. 재니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받아쳤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죠?”


기다렸다는 듯 머리 벗겨진 남자가 말했다.


“저희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커스틴 홀이 의식이 있을 땐 불행한 감정, 아니, 분노나 증오로 표현해 보지요. 커스틴 홀이 의식이 있을 땐 그녀의 증오 또한 살아있어 이상 현상을 발생시키지만, 의식이 없을 땐 증오 또한 존재하지 않아 이상 현상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재니스는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첫째로는 그것이 여태 조립하지 못한 생각들을 한데 모아 관통하는 말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가설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의식이 없을 때라니… 그럼 그 가설로 무엇을 한다는 거죠?”


“우선 저희 내부에서 대책을 찾아보겠습니다.”


중간에 앉아 있는 위원장이 말했다. 이상으로는 접근하지 말라는 듯 선을 긋는 말투에 재니스가 팔을 내저었다.


“아니요,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같이 얘기를 나눠보시죠. 먼저 아까 누가 말한 대로 커스틴의 분노나 증오와 같은 감정을 줄여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평화롭게요! 스위스에 있는 요양원에 보내서 정신과적 치료를 받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도 있겠고요.”


위원장이 안심하라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재니스에게는 입을 찢어 웃는 광대로 보였을 뿐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당장은 저희도 생각이 필요합니다. 리 씨가 최선을 다해 답해주신 것처럼 저희 역시 가설을 입증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다만, 당장 닥쳐오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당분간은 재난 대응 인력으로 협조를 부탁드려도 될지요. 기존 대원들과 함께 다니며 발생 예상 지역을 찾아주시면 좋겠는데, 괜찮으신가요?”


재니스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잡을 것 하나 없는 파도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계속)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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