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하고 부드러운 변화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유령이 미는 도시≫

by 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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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터: https://brunch.co.kr/@sisunwoo/19

[2] 믿기 힘든 것에 대한 목격: https://brunch.co.kr/@sisunwoo/20

[3] 공통분모: https://brunch.co.kr/@sisunwoo/21

[4] 통계, 예언, 가설: https://brunch.co.kr/@sisunwoo/22



[5] 불길하고 부드러운 변화



그날 이후 재니스는 재난 대응 인력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협조하는 대신 재니스가 약조로 내건 것은 두 가지였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대책을 결정하게 되면 자신과 커스틴에게 알릴 것, 대책을 실행하기 전에도 자신과 커스틴의 허락을 받을 것. 그들은 동의했다.


그럼에도 사실상 그들이 세부적으로 계획해 놓은 대책을 재니스의 말 한마디로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재니스 또한 고된 일정에 시달려 자세하게 얘기를 듣기 어려웠고, 결국 커스틴의 허락을 받았냐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잠이 조금 더 올 뿐이에요. ”


“커스틴은 동의했나요?”


“그럼요.”


처음 그들로부터 들은 대책은 커스틴에게 기존에 사용하던 안정제보다 조금 더 강한 안정제를 투약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전달해 준 여자는 ‘그럼 당연히 동의해야지, 뭘 묻냐.’라는 투로 대답했다. 재니스는 그녀의 태도가 거슬렸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억지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들이 믿음직스러운 건 아니어서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커스틴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맞아. 설명 들었어.”


전화 너머로 커스틴이 대답했다. 재니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커스틴이 사뭇 갈라진 목소리로 잔잔하게 얘기했다.


“괜찮아. 이렇게 해서 해결되면 다행이지. 병실도 넓은 1인실로 옮겼어. 노란색 전등 때문인지 아늑한 느낌도 들어. 텔레비전을 보다가 가져다주는 알약을 먹을 뿐이야. 가끔은 몽롱한데,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개운한 날도 있어.”


재니스는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려다가, 허튼 희망을 주는 것만큼 끔찍한 건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맥한테 말해. 맥이 같이 도와주기로 했어. 내게 전화도 주고.”


“응.”


간당간당 이어지고 있던 대화가 끊어질 것 같았다. 재니스는 커스틴과 조금 더 대화하고 싶었다. 일을 하다 보면, 빛을 등지고 아지랑이같이 꿈틀대는 유령을 찾아내는 것보다, 건물을 비우라고 사람들과 씨름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씨름을 하다 보면 흐르는 시간만큼 온몸에 기력이 빠져, 면회 시간을 맞춰 병원에 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면회를 대신한 통화를 할 때, 가능한 한 더 길게 하고자 했다.


재니스는 일부러 전화 너머로 들리는 시엠송을 아는 척했다.


“저 노래는 뭐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들려? 헬렌 치즈 광고 노래야. 요새 승승장구지. 헬렌 치즈와 함께, 깨끗한 목장 신선한 치즈, 믿을 수 있는, 헬렌 치즈와 함께.”


재니스는 어정쩡하게 따라 부르는 커스틴의 노랫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중독성 강한 노래네.”


“이번에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재난 지원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해서 이미지도 좋아졌어. 가끔 인터뷰하더라고. 텔레비전을 보니까 별의별 정보를 다 알게 돼. 난 원래 텔레비전을 잘 안 봤거든.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디지털 디톡스도 어제 알게 된 단어야. 어, 방금 광고에 기부 감사 배지를 증정한다고 나왔는데, 다음에 하나만 사다 줘. 뒤에 있는 핀은 맥이 빼서 가져가겠지만.”


그때 저편에서 ‘핀 뿐이겠어요. 위험한 건 다 가져갈 겁니다.’라고 소리치는 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어. 우유는 로저스 스타 우유가 더 맛있는데, 사람들이 뭘 모르네.”


“네가 뭘 모르는 거야.”


재니스가 웃자, 커스틴도 웃었다.


“커스틴, 그거 알아? 로저스 스타 우유의 로저스 씨가 위원회의 회원으로 있는 거. 아들은 위원장이야.”


대답이 들리지 않자, 재니스는 커스틴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그럼 그때 봤던 사람이 로저스 씨인가.”


커스틴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로저스 씨를 봤다고?”


재니스는 위원회 사람 중 극히 일부가 상황 보고를 위해 가끔 병원에 들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헨리 로저스까지 들렸을 줄은 몰랐다.


“확실한 건 아니야. 검진받으러 가는 길에 누가 대기 장소에 앉아 있길래 힐끔 봤는데, 백발에 로저스 농장 로고가 있는 모자를 눌러쓰고, 같은 글자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 위원회 회원이라고 하니 혹시나 해서.”


귀신 들린 농장이라는 오명에도 농장 로고가 있는 옷을 입고 다닐 사람은 헨리 로저스밖에 없긴 했다. 아들이 위원장이라 따라간 걸지도 모르지. 곧 약 먹을 먹어야 한다는 커스틴의 말에 둘은 통화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재니스는 도시 곳곳을 걸어 다니며 커스틴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커스틴이 말했던 대로 그녀의 혈관을 타고 건물 앞에 도착해서, 커스틴에게 어떤 불행이 있었을지 상상하곤 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꼭 남의 불행을 탐험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다행인 건, 커스틴이 새로운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거의 매일 눈에 띄었던 그들의 모습이 잦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잦아든 건 아니어서 커스틴은 약을 두 번 더 바꾸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치사량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안정제를 먹고, 수면제를 복용했다. 하루 대부분이 잠이었고, 때로는 이틀 넘게 잠에 빠져있기도 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시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했다. 점차 버려둔 고향으로 복귀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재니스는 하루에 한 번 커스틴에게 전화했는데, 대부분 맥의 선에서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주고받는 대화도 매번 같았다. 커스틴이 자고 있냐는 물음에 맥이 대답하는 게 전부였다.


“깨어는 있는데, 받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상태가 좀 그렇네요.”


그럼에도 어떤 날들은 그들이 살아나서 다시 벽을 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목록에 있는 건물이 다 무너지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불행의 복수가 끝나게 되는 건지, 아니면 관련 없는 건물들을 무너뜨릴지, 또 다른 일이 벌어질지. 하지만 금방 생각을 관두었다. 그때가 될 때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니스는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멈춰 섰다. 조사 대원 중 한 명의 외침 때문이었다. 조사 대원들과 작업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그들의 실루엣 또한 아주 예민한 몇 명만 볼 수 있었다. 열한 명의 조사 대원 중에서는 단 한 명만이 재니스와 비슷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가 정처 없이 앞으로 가던 재니스를 대신해 찾아낸 것이었다.


“잠시만요, 재니스! 저거 ‘그들’ 맞죠?”


양옆에 건물을 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커스틴이 말해준 목록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건축물의 크기와 불행의 크기가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재니스는 어서 사람들을 내몰고 집으로 돌아가서 커스틴과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네, 레이크 정신 병원입니다.”


전화 너머에선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늘 듣던 빠르고 명확하고 경쾌한 남자 목소리가 아니었다. 재니스는 커스틴을 담당하고 있는 맥의 근무 시간을 꿰고 있었다. 불안감이 가시처럼 심장을 쿡쿡 찔렀다.


“맥 선생님 안 계신가요?”


“아, 맥 선생님이요? 맥 선생님은 어제 오후 부로 다른 병원으로 가셨어요.”


상상도 못 했던 대답에 그녀의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말도 없이? 맥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어제는 전화를 건너뛰어서 그렇다 쳐도, 전날 저녁까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어디로, 아니 왜 가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어제 처음 와서요. 자세한 건 잘….”


수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역시 적잖이 당황한듯했다. 애먼 사람을 다그치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커스틴 홀 환자와 잠시 통화할 수 있을까요?”


“아, 604호 커스틴 홀 환자 말씀이시죠? 잠시만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와 발자국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는데, 발자국이 더해지는 대신 아까와 똑같은 크기와 울림만 들렸다.


“지금 의사 선생님과 면담 중이신 거 같네요.”


재니스는 잘못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한가요?”


“네?”


“의사 선생님과 면담 중인 게 확실하냐구요.”


“네, 그렇게 체크되어 있습니다.”


재니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럼, 커스틴 홀 환자가 나오면 이 번호로 바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무언가 적는 소리가 들렸다.


“네, 오늘 저녁은 제 담당이 아니라 메모 남겨 놓겠습니다.”


재니스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맥에게 받아놓은 긴급 연락처가 있었다.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어째서 이럴 때 옮긴 거야.”


커스틴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 했는데, 새로 온 사람에게서 그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역 뉴스에선 헬렌 치즈 농장에서 나온 우유가 지역 우유 판매량 1위에 등극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만년 2등에서 1등으로 올라섰다는 내용이 짧게 화면을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긴급 속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1,800톤의 무게를 가진 20층 높이의 거대 구조물이 추락하면서 옆에 있는 건물들을 모조리 삼키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전화는 신호음이 끊기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마저도 끊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때도 화면엔 아비규환의 현장이 그대로였다.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 사람들을 급히 내쫓지 않았다면 큰 인명 피해로 번졌을만큼 거대한 잔해 속에, 같이 부서진 것들과 겨우 살아남은 것들이.



(계속)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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