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죽음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유령이 미는 도시≫

by 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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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터: https://brunch.co.kr/@sisunwoo/19

[2] 믿기 힘든 것에 대한 목격: https://brunch.co.kr/@sisunwoo/20

[3] 공통분모: https://brunch.co.kr/@sisunwoo/21

[4] 통계, 예언, 가설: https://brunch.co.kr/@sisunwoo/22

[5] 불길하고 부드러운 변화: https://brunch.co.kr/@sisunwoo/23



[6] 모두를 위한 죽음


다음 날 아침, 재니스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달려가면서 진작 이럴 걸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전화로 대신했던 자신에게 기가 막혔다.


지난밤 병원에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맥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니스는 재난 대응팀에게 걸려 온 전화에 늦은 밤 내내 얘기를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고, 눈을 뜨자마자 커스틴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 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안내 데스크에 있는 여자는 상상 이상으로 어려 보였다. 재니스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알고 있었다. 마치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연락을 드리려고 했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한 손에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불길하게도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커스틴 홀은요?”


“아, 그게….”


재니스는 빨리 듣고 싶었지만 동시에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안내 데스크 위를 비추는 형광등이 두 번 더 깜빡였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제저녁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을 통보하는 목소리는 늘 정갈했다.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방금 전보다 한껏 성숙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오늘 출근해서 병실이 비어 있어 연락하던 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커스틴 홀 환자가 응급 처치실에 있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요. 어제저녁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도로가 마비되어서 당직 서기로 하신 분이 늦게 도착했는데, 병실이 잠잠한 게 이상해서 둘러보니 그 상태였다고 합니다. 당직 서신 분은 현재 조사 때문에 경찰과 같이 있는 상태고요.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리 씨.”


입안에 수많은 말들이 맴돌았지만 재니스는 정작 내뱉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미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용없는 말을 내뱉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환자를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게 가능한 일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제저녁 퇴근 전에 진료가 길어지는 것 같아 선생님께 얼마 정도 걸릴지 여쭤봤는데, 알아서 들여보낼 테니 먼저 퇴근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층에 입원해 있는 분은 홀 환자 한 분이라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재니스는 정처 없이 떨리는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그때가 커스틴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였나요?”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문이 잠겨있어서요.”


문이 잠겨있었다고?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의사 선생님이 누구였는데요?”


“로페즈 선생님이셨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 세 분 중 여자 선생님은 그분 하나라. 여자 목소리였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니스와 얘기하던 그녀 역시 경찰에 소환되었고, 재니스도 따라갔다. 그곳에서 확인한 CCTV는 무용지물이었다. 병실 안은 찍고 있지도 않았고, 응급 처치실이나 진료실에서도 미묘하게 빗겨나가 있었다. 그곳이 제대로 담고 있는 건 안내 데스크 근처와 대기실뿐이었다. CCTV는 주요한 곳에 설치된 몇 개만 돌아간다던 맥의 말이 생각났다.


새로운 간호사가 그날 저녁 진료실 안에서 여자 목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여 뒤늦게 의사 로페즈가 도착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로페즈는 한참 전에 커스틴의 진료를 마치고 이미 떠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는 커스틴이 병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퇴근했다고 말했다. 모두의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결국 사건은 커스틴이 응급 처치실에서 약통을 훔쳐, 진료실에 숨어 의사인 척을 하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자신의 병실에서 자살한 것으로 종결되었다.


“맥은 그녀가 항상 몸도 못 가누는 상태라고 했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죠?”


“타살의 흔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 했으니,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는데 안타깝습니다.”


재니스는 믿기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베테랑 간호사, 그 자리에 들어온 어리바리한 신입, 제대로 찍는 것 없는 CCTV, 늦게 도착한 당직 간호사. 어긋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커스틴이 사라지자 이상 현상도 사라졌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위원장과 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안면 없는 사람들이 오갔다. 커스틴은 죽었지만 도시는 다시 소생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침울함 대신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


‘커스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재니스는 장례식 내내 답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더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재니스 역시 조사 대원들과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본래의 일에 복직하기로 마음먹고, 계약을 끝내기 위해 위원회 건물로 향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렸을 때, 한바탕 파티를 하듯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공명이 잘 울리는 곳이라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녀는 짧은 복도를 지나 회의실 문 앞에 다다라서 문고리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조금 전 요란한 소리와 다르게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와서 손을 멈추었다.


“누군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이미 다 끝난 일이니 구덩이에 빠진 쥐처럼 벌벌 떨 필요 없소.”


처음 목소리는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마지막 목소리는 분명 헨리 로저스였다. 특유의 낮고 걸걸한 목소리였다. 재니스는 문을 여는 대신, 옆으로 살짝 비켜났다. 문과 바닥 사이의 좁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나중에 밝혀질까 봐 그런 거죠. 왜 수사 프로그램을 보면 ‘영원한 비밀은 없다!’ 하면서 뭘 자꾸 밝혀내잖아요?”


남자의 말에 헨리 로저스가 끌끌 웃었다.


“이제 위원장 역할이 끝나니까 심심할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거요?”


위원장. 재니스는 구별하기 어려웠던 목소리가 항상 굳은 얼굴로 오른쪽에 앉아 있던, 가장 말이 없던 위원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귀신 어쩌고 하는 것도 지반이 약해서 그렇다, 조사 결과 위험 지역이라 그렇다 둘러대면서 이미지를 지켰는데… 이거 거기까지 다 연결된 건 아시죠?”


위원장이 말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잔 받기나 하지.”


그때까지 재니스는 벽을 민 ‘그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한 것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렇다 보니 위원장이 염려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 끼어든 목소리에 그녀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래요. 커스틴 홀은 어차피 죽을 여자였어요.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이지.”


얼마 전 흙 속에 묻힌 제 친구의 이름에 호흡이 가빠졌다. 이어서 헨리 로저스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시기를 앞당긴 건 찰스 스미스요. 내 그놈이 나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지.”


“찰스 스미스라면, 그 헬렌 치즈 농장주요?”


“맞소, 농장주라고 하기에도 쪽팔린 이름이지. 자기 고모 헬렌 스미스에게 물려받아서 가지고만 있었지 사업을 제대로 굴리지도 못했소. 지역 소개 간판에도 달리지 못한 만년 2등이었지, 그것도 아주 차이가 나는 2등 말이오!”


말을 마친 헨리 로저스가 다시 술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재니스는 자신의 소리가 들릴까 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사업을 확장하고 이쪽저쪽에 나와서 기부니 뭐니 착한 척을 해대는 꼴은… 제길. 그 인간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아는데, 이러다간 내 숨이 턱! 막혀 죽을 지경이었소.”


“로저스 씨가 아주 재수가 없긴 했죠. 그때 그 기자도 어디서 뚝 떨어져서는, 재난 현장을 괴담처럼 맘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헨리 로저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도 원래 대니얼에게 농장을 넘기기로 했었소. 오명을 벗어야 그 애도 나도 뭘 새로 시작하는데 벼랑 끝에 내몰리니 다른 방법이 없었지. 아직도 그 여자가 증오스러운 건 마찬가지요.”


“그래도 이제 서서히 수습되고 있지 않습니까? 기다려보셔야죠.”


“그럼요, 금세 회복될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 두 번째 의인 대니얼 로저스 위원장님이 안 보이시네요? 어디 있습니까?”


또 다른 누군가의 물음에 헨리 로저스가 혀를 찼다.


“그 일이 끝나고선 자기 집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소. 말할 게 있으면 며느리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해야 할 정도요. 별것 하지도 않고 마음이 약해서는.”


“일이 끝났으니 말인데, 그때 그 여자 목소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새로 온 간호사가 들었다는 거요.”


여자 목소리. 로페즈 선생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가 결국 커스틴의 목소리로 종결한 목소리를 말하는 듯했다. 재니스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가 녹음 버튼을 누르자마자 헨리 로저스도 위원장도 아닌 목소리가 말했다.


“그때 진료실에 있던 건 커스틴 홀과 로저스 씨 부자 아니었습니까?”


재니스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잠긴 진료실에 있던 게 헨리 로저스와 대니얼 로저스라고? 신입 간호사의 여자 목소리 진술 때문에 여자 의사 로페즈가 불려 왔고, 그녀의 알리바이가 확실해지자 커스틴의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발생지가 정신 병원이라는 것과 커스틴의 자살 시도 이력도 사건을 빨리 마무리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건 대니얼이 여자 목소리 흉내를 낸 거요. 로라 양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보다 했던 거지. 안 그래도 실행 날짜를 잡고 대니얼을 시켜 기존 인력을 급하게 바꾸고 있었는데, 시기가 좋았소. 로라 양이 그 병원에서 조금만 더 일했으면, 로페즈 목소리 하나 구분 못 했겠소?”


문틈으로 박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야, 대니얼이 순발력이 있었군요.”


“그때 홀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니 누구라도 목소리를 내야 했소. 나머지는 뭐, 쉬웠지. 몇 번 방문해서 CCTV 사각지대는 이미 꿰고 있었고, 그 병원은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는 뒷문도 있었으니 말이오.”


재니스는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종료 버튼을 눌러 녹음을 마치고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덕분에 다들 도시로 돌아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의인이십니다, 의인. 한 잔 더 마시죠!”


“좋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만일 이게 밝혀진다고 한들…”


재니스가 하얀 문을 열었다. 그녀의 등장에 로저스 농장 로고 모자를 눌러쓴 백발노인이 멈칫했다. 그의 옆에는 위원장 하나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위원회 회원 둘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밑바닥만 겨우 남은 위스키 한 병과 잔 네 개가 자리했다.


“병원에 왔던 이유가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군요, 로저스 씨.”


늘 굳은 얼굴로 오른쪽에 앉아 있던 위원장이 당황한 얼굴로 재니스를 바라보았다.


“리 씨가 여기는 어떻게….”


“그럼, 안내 데스크 근처와 대기실에 달린 CCTV가 돌아간다는 걸 알겠네요? 커스틴이 죽기 전 당신이 대기실에서 서성거리던 영상과 당신의 말을 녹음한 이 녹음본을 경찰에게 전달하겠어요. 커스틴 홀은 자살한 게 아니라 당신 부자에게 살해당했다고요!”


재니스는 분노에 찬 눈으로 헨리 로저스를 바라봤다.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마찬가지로 재니스를 바라보았다. 모자의 챙 때문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인의 눈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었다.


“아까 하려던 얘기를 계속하겠소. 만일 이게 밝혀진다고 한들 세상에 나를 욕할 사람은 없을 거요. 건물이 뒤집히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내내 잠재우는 약을 먹이며 젠틀하게 대해준 걸 감사한 줄 알아야지. 이게 밝혀지면 누군가는 분명 무덤을 파내 홀의 시체를 두들겨 팰지도 모르는 일이오.”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오히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친구라고 감싸고, 일을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하게 한 자네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지.”


“커스틴을 죽이려는 게 일의 진전인가요?”


“적어도 자네가 건 약조 때문에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지 못한 건 사실이오. 외부에 아무것도 발설되지 않은 지금, 커스틴은 자신의 불행한 삶을 못 이기고 세상을 등진 불쌍한 여자로 잠들 수나 있을 테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그녀는 마을을 끔찍한 저주에 몰아넣은 마녀가 되는 거요.”


헨리 로저스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경찰을 찾아가건 뭘 하건 내가 할 말은 그뿐이오. 커스틴 홀은 모두를 위해 죽어야 했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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