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문장을 다시 만나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틀림없이 내가 썼고 오랜 고민과 취재 끝에 나온 최종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낯선 공간에서 출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면 그 기사가 나를 배신한 것 같은 감정마저 든다.
유튜브에선 기사의 제목과 내용만이 흘러나온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이라는 말 뒤에는 나의 노동이 숨어 있다. 사실을 확인하고, 통계를 살펴보고, 인터뷰를 했다. 기사 한 줄 한 줄에는 기자의 하루가 녹아있다. 누군가는 그 문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쓴다. 그나마 매체 이름이라도 언급해 주면 감사해야 할 정도다.
기자는 기사를 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익을 위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기록한다. 기사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제공되는 공공재에 가깝다. 클릭 수가 많아도, 사회적 파급력이 강해도 기자의 수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기사가 누군가에겐 사익의 원천이 된다.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고, 기자가 쓴 문장을 그대로 읽으며 조회 수를 올린다. 조회 수는 광고 수익으로 이어지고, 기자의 노동은 유튜버의 소득이 된다.
분명히 그 문장은 내 것이었다. 내가 듣고, 검토하고, 책임진 정보였다. 그 안에는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책임이 있었다. 그토록 쉽게 베껴 쓰기엔 너무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나 복사·붙여넣기는 너무도 간단했다. 심지어 기사 내용에 엉뚱한 해석을 더해 가짜뉴스까지 만들어낸다.
기자의 글쓰기가 유튜브 콘텐츠의 원재료가 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기자는 노동의 흔적을 상실한다. 어떤 이는 ‘이 정도 인용은 다들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우리는 인용이 아니라 도용이라는 것을 안다.
저작권은 법 이전에 존중의 문제이다. 좋은 기사라고 여긴다면 그 문장 뒤에 있는 기자도 함께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이름을 지운 기사는 곧 기자의 존재를 지운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도용한 기사엔 기자의 피, 땀, 눈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자는 기록을 남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자 존재 방식이다. 그러니 기사를 그냥 가져가지 말고, 그 문장의 주인을 기억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