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이 남긴 것들] 3. 선거판 흔든 음모론

by 임춘한

제21대 대선을 뒤흔든 건 정책도 비전도 아니었다. 선거판의 중심엔 ‘음모론’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러시아제 저격총이 국내로 밀반입됐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총기는 사거리가 2km에 달하는 고성능 저격무기였다.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유리 뒤에 서서 유세를 이어갔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이렇게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경호원들이 둘러싸야 유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이재명과 민주당의 잘못이냐”며 국민의힘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민주당이 말한 위협의 정체는 ‘암살 가능성’이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해 1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한 남성에게 흉기로 습격당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왼쪽 목 부위를 공격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민주당은 이 전례를 상기시키며, 물리적 위협이 실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승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은 “이 후보에 대한 테러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고, 김민석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총기와 폭약에 의한 테러 제보도 입수되고 있어 결코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현희 공동선대위원장은 “러시아제 권총, 저격총 밀수, 블랙요원 동원 등 구체적인 제보가 빗발치고 있다”고 거들었다.


모든 위협은 공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발언으로만 존재했다. 구체적이라는 제보는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 경찰은 러시아제 저격총에 대해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에 별도로 접수된 사건이 없고, 신고나 제보 등이 오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선 후보 살해협박글 작성자가 실제 위해를 가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글만 쓴 것이라고 했다.


설사 민주당이 받은 제보가 풍문 수준이었더라도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사기관의 검증을 요청했어야 한다. 공당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안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공식적이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 아니냐는 식의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


음모론은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작동했다. 위기감은 급박했고, 불안은 당장 눈앞에 있었다. 물리적 위협을 받은 피해자 프레임이 작동하며,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 가동됐다. 검증이 불가능한 정보는 가장 강력한 확신이 되며, 논리보다 공포와 연민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러시아제 저격총설은 언론 취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후보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이 제한됐고,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질문하는 일이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감시 기능은 실체 없는 위협 앞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정치의 무게는 말로 드러난다. 선거에서의 발언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선이 끝난 지금 오직 질문 하나가 남았다. 신빙성 있는 제보는 정말로 있었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음모론의 증거가 될 것이다.


◆해당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사진출처=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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