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이 남긴 것들] 5. 사라진 목소리

by 임춘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전국 곳곳의 광장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로 다시 채워졌다. 노동자,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 정치가 외면해 온 투명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전국 1700여 개 단체가 모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주말마다 집회를 이어갔고, 광장은 민주주의의 유일한 증거가 됐다. 비상행동의 온라인 공론장인 ‘천만의 연결’에서 가장 많이 나온 사회대개혁 요구는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권리’(25.9%) 차지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구조적 차별을 정치가 이제는 해결하라는 준엄한 요구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선거 유세 내내 이 후보는 비동의간음죄 신설,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후보는 대선 TV토론에서 “방향은 맞지만 현안이 복잡하다”며 즉각적 입법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철저하게 정치공학적 판단에 따랐다. 20·30대 남성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여성과 소수자 이슈는 철저히 배제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일부 시민의 존재를 지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일 수 없다.


사실상 이 후보는 반페미니즘 노선에 동조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선택은 단기적인 표 계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29개 정부 고위직 중 여성은 고작 3명 수준이다. 이처럼 체계적인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회피는 곧 차별을 묵인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차별 문제를 지적해 왔다. 국제연합(UN) 인권조약기구는 2007년부터 14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인종,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권은 번번이 외면해 왔고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후보는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정작 지금 말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권 초기에 하지 못하면 영원히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집권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 더는 추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제를 선거 전략의 변수로만 여겼다.


6·3 대선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정권 교체로 완성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광장에서 분출된 분노와 요구가 투표소에서는 사라졌다. 그 사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 뒤에 수많은 이들의 존재가 잊혀졌다. 대선은 끝났지만 민주주의의 회복은 진행형이다. 그 수준은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정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로 판단될 것이다. 현재로선 누구를 위한 선거였느냐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해당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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