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이 남긴 것들] 7. 막장 TV토론

by 임춘한

이 장면을 아이들이 봐도 괜찮을까. 지난달 29일 공중파로 생중계된 대선 TV토론을 지켜보다가 든 생각이다. 해당 토론은 대선 후보자 검증을 위한 장이 아니라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선을 넘은 언어와 사라진 품격으로 공론의 장은 무너졌다.



논란의 중심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있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장남 이동호씨가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문제 삼으며 성폭력적 발언을 일삼았다. 이준석 후보는 "제가 창작한 게 아니다.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직접 쓴 글”이라며 “어떻게 더 순화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이 불러온 파장을 외면한 채 국민들의 비판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맞섰다.


당연히 이재명 후보 가족의 문제는 공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방송 시간대와 형식을 감안할 때 거의 원문 그대로 전한 것은 공론장의 책임을 저버린 행위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9년 제정한 방송언어가이드라인에서는 욕설과 비속어 등에 대해 “남녀의 성기를 직접 언급하거나 속되게 이르는 표현, 성기나 성행위 등의 성적 표현이 포함된 내용은 가급적 방송하지 않아야 한다”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무음 삐 소리 모자이크 처리한 후 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는 방송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준석 후보는 선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자신이 탄압받고 있는 양 프레임을 전환했다.


개혁신당은 2017년 대선 토론에서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돼지발정제’ 발언을 거론했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심 후보는 해당 사건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심 후보는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질문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항의의 뜻을 표했다. 오히려 같은 방송에서 이준석 후보가 몸담고 있던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돼지 흥분제 강간미수의 공범”이라며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고, 국가지도자의 품격 문제”라고 언급했다.


민주·진보 진영 갈라치기에도 나섰다. 이준석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향해 "민주노동당 기준으로 여성 혐오에 해당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정치적 계략이었다. 만약 권 후보가 여성 혐오라고 하면 이준석 후보의 발언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반대로 아니라고 하면 위선자 프레임에 갇히는 구조였다. 권 후보는 즉답을 피했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언사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준석 후보는 진보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날을 세웠다.


유권자들은 후보자 검증을 원한다. 그러나 상대를 자극적 언어로 공격하고, 그것을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피폐하게 만든다. 이번 TV토론에서 그의 언행은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공론의 품격을 스스로 훼손한 사례로 남았다. 더 나아가 대선 토론이라는 제도의 존립 근거마저 위협한다.


이준석 후보는 젊은 정치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그러나 나이가 젊다고 해서 곧 새로운 정치는 아니다. 그는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여준 정치적 태도와 행보는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의 낡은 문법을 답습하고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준석 후보가 청년 세대 다수를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의 토론 방식은 ‘젊은 올드보이’라는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대선이 끝났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 후보는 의원직 사퇴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해당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사진출처=MBC


#기자수첩 #칼럼 #임춘한기자 #대선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개혁신당 #민주노동당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 #진보 #보수 #중도 #TV토론 #성폭력

매거진의 이전글[6·3 대선이 남긴 것들] 6. 늑장 공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