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이 남긴 것들] 10. 전체주의의 전조

by 임춘한

6·3 대선에서 불길한 징후들이 감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 평등, 국민 주권이라는 가치가 선거를 관통한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섬뜩한 전체주의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흐름은 특정 진영이나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 전반과 사회 저변에서 감지되는 기류다.


전체주의의 전조는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대중독재’의 형태다. 다수가 동의하고 박수치는 순간 권력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속성을 띠기 시작한다. 다원주의가 사라지고, 사회적 약자가 고립되며, 다른 의견은 배척된다. 독일 나치즘, 일본 군국주의,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등은 대중의 지지라는 명분을 업고 권력을 정당화하며 폭주했다. 정치가 종교화되고 국민은 신앙의 이름으로 권력에 헌신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조건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 틀에 맞춰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이론적 접근을 넘어 현실의 경고음을 듣는 작업이다. 첫째, 전체주의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킨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모든 문제를 하나의 슬로건으로 치환하고 단일한 해법만을 내세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적폐청산, 기득권 타파, 국민의 명령이라는 구호들은 대표적인 대중 선동의 구호다. 여기에 선전과 허위정보가 덧입혀지면서 진실은 점점 사라진다. 지식인은 침묵하고 지성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대신 복종과 충성만이 미덕으로 자리 잡는다. 정치적 반대세력은 언제부터인가 범죄자처럼 낙인찍힌다. 반국가 세력이라는 말들이 일상어처럼 사용되며 이견을 불허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둘째, 대중을 역사적 사명을 띤 존재로 신화화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응원봉 혁명을 이끈 정치 세력이 유일무이한 구원자로 포장됐다. 대중을 위대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일체감을 부여했다. 개인은 거대한 흐름 속에 자아를 맡기고 스스로 영웅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다름은 곧 적대시됐다. 국민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하며, 오로지 과거 청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셋째, 전체주의가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감시가 필요하다. 과거의 비밀경찰은 현대의 디지털 자경단으로 대체됐다. 그 감시는 더 치밀하고 광범위하다. 가짜뉴스 방지라는 미명 아래 신고, 검열, 여론 통제가 정당화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창은 권력을 비판하는 공간이 아니라 상호 감시와 검열의 전장이 돼가고 있다.


넷째, 폭력이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단순한 언어폭력을 넘어 물리적 충돌로 번지는 사례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정치적 이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집단적 린치를 당하고, 현실에서 신체적 위협에 노출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폭력을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권력의 태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는 공포와 증오를 자양분 삼아 사회를 더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결국 테러정치는 정치인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끼리 서로를 겨누는 칼날로 변했다.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이 잘못된 구조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사유할 능력을 상실하고, 타인의 처지에서 사태를 바라보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못할 때 악은 증폭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어떤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소통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던져진 질문이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가.


◆해당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사진출처=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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