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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Nov 30. 2023

종속이론

종속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왜 저발전이 지속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후기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적 접근으로,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경제적 착취와 인종차별을 당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국제정치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들은 서구의 경제발전 이론은 자국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새로운 이론적 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종속이론은 여국가들이 식민지에서 독립은 했지만 경제는 여전히 종속상태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결국 선진국에게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종속이론은 주로 남아메리카 및 아프리카계 미국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국제연합(UN) 산하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아르헨티나의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 등이 있다. 1948년 ECLAC는 서구식 수출주도형 성장론에 대항해 국유화, 수입대체 공업화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펼쳤다. 수입대체 공업화는 외국에서 수입하던 상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려는 정책이다. 1964년 UN 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프레비시 보고서가 제출됐다. 해당 보고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개발도상국에서 불리함을 지적하고, 새로운 국제무역기구의 설립 및 무역 특혜 등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개도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5%까지 끌어올려 세계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했다.      


종속이론의 주장은 100%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 선진국들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보호무역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시장에 대한 통제력 행사는 기본이고, 특정 산업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세금 투입과 정책 지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신들이 취했던 방식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이 같은 행태를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명명했다.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먼저 올라가 후진국들이 뒤따라오지 못하게 걷어찼다는 논리다.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선전국과 후진국의 불평등 해소를 방해하는 주범으로 여겨진다.     


1960년대 제3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냉정구도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을 표방했다. 제3세계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신생국 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1952년 아시아·아랍 12개국 회의, 1954년 인도와 중국의 평화 5원칙선언, 1955년 4월 반둥회의를 거쳐 하나의 국제정치 세력으로 발전했다. 이때에 발맞춰 종속이론은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1980년대 제3세계 부채위기 및 1990년대 지속적 경기침체를 맞이하면서 힘을 상실했다. 특히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이뤄내면서 이론적 위상을 완전히 잃어갔다.     


종속이론은 구조주의와 신마르크스주의로 계열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학자들마다 연구범위, 문제인식, 해법 등이 다양하며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 없다. 종속이론은 치명적 문제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일단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발생한 착취 구조에 대한 인식은 같으나 국내적인 요인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의 결정적 차이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관료적 권위주의 등 내부 문제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핵심 개념인 종속의 정의는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종속 탈피를 위한 뾰족한 해법 역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정치이론에서 종속이론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해져 버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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