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선택한 학교
첫째 아이가 7세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모두 강릉으로 이사를 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어린이집을 졸업 못하고 온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지만, 어린이집 때문에 1년을 더 주말부부로 사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녔던 아이는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강릉으로 이사 결정 후 제일 처음 알아본 것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다. 아쉽게도 정원이 꽉 차있어서 강릉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닐 수는 없었다.
대신 전원주택을 선택했고, 근처 병설유치원으로 입학했다. 아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는 했지만 즐거워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아이가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초등학교를 집착적으로 찾아보았던 것 같다. 강릉의 모든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공지사항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이가 입학할 때쯤 ‘면’에서 ‘동’으로 이사할 생각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학교가 우리가 갈 수 있는 학교였다. 강릉은 작은 학교 살리기의 일환으로 ‘면‘단위에서는 해당 학군지의 학교로 가야 하지만 ’동‘ 단위 지역에서는 시골의 작은 학교 내 정원이 여유가 있다면 그곳으로 입학할 수도 있다.
가장 관심이 갔던 학교는 사천의 작은 시골학교였다. 서울에서 이사 올 때부터 그 학교가 우리와 결이 맞겠다며 지인들이 추천해 준 곳이기도 했다. 나도 그곳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 입구로 가는 길이 매우 작은 도로였고, 농로를 지나야 해서 차가 옆으로 빠질까 봐 두려워서 운전할 수가 없는 길이었다.
6년, 아니 작은 아이까지 8년이나 그곳을 등하교시키는 일이 자신 없었다. 대신 선택한 곳은 새로 개교하는 ’ 혁신‘학교였다. 마침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그 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고, 작은 학교의 단점을 큰 학교의 ’ 혁신’ 학교가 보완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코로나19로 난리였고, 입학은 4월로 미뤄졌고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다가 5월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새 학교, 새 건물, 새 친구, 모든 것을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외지인인 우리에게도 좋았다. 다만 코로나라는 복병과, 혁신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던 날, 강원도 교육청이 지정한 혁신학교는 강원도 교육청에 의해 혁신학교 지정이 취소되었다. 첫째 아이는 학교 생활은 잘하고 좋아했지만 친구는 많이 사귀지 못하였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이 아니었고,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녔던 아이라 아이가 생각했던 친구는 본인도 친구지만 어른들과의 관계도 중요했는데, 큰 학교에서 부모들끼리 다 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둘째 아이가 입학해야 했고, 우리는 작은 학교로가기로 결정하였다. 다시 가 본 사천의 작은 학교는 내가 운전해서 갈 수 있을 만큼 도로의 폭이 넓어졌고, 라이딩 기간이 8년에서 6년으로 단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