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아이를 낳고 살던 곳은 서울의 끝, 양재동의 아파트였다. 집 앞 건널목만 건너면 미국의 대형마트 코스트코가 있었고, 길을 건너지 않아도 대한민국 대형마트 이마트가 바로 옆,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다.
숲놀이, 자연놀이 할 수 있는 양재시민의 숲, 문화예술공원도 아이들과 걸어가기 충분한 거리였다. 모두들 좋은 곳에 살고 있다고 부러워했는데 정작 나는 5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주택보다 사무실이 많은 지역이라 창문 밖을 내다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고속도로의 소음과 먼지로 창문을 열고 살기도 쉽지 않았다. 도시야경이 멋지게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에 매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밤에도 꺼지지 않은 건물의 조명과 고속도로 차들의 헤드라이트는 그저 눈만 부실 뿐이었다. 땅은 젖었는데 지금 비가 오는지 긴가민가 할 때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한참을 기다려 지나가는 사람이 우산을 쓰고 가는지 들고 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남들은 대형마트가 코앞이라고 좋겠다고 했지만, 대형마트에 가봤자 소비만 자극할 뿐. 동네 슈퍼에서 소소하게 두부 한 팩, 호박 한 개만 얼른 사 갖고 나왔으면 하는 것이 그 당시의 소박한 꿈이었다. (물론 이마트에서 그렇게 장보기도 했지만 동네 슈퍼의 맛은 아니었다)
주말에 서울은 어디든 나가려면 차 타고 한 시간. 차가 막혀 남편의 짜증을 받아주기 싫을 때는 서초문화예술공원(문예공)으로 가면 되었다.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아이들과 양재에 살면서 제일 많이 갔던 곳이고, 제일 좋아했던 곳이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이지만 큰 나무로 가득 찬 그곳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었다. 아파트 친구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곳은 우리들의 근거지였다. 주말에 다른 곳에 차 타고 나가도 더 나은 곳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문예공이 최고였고, 시민의 숲은 최선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곳.
그곳은 도시었지만 섬이었다.
언젠가는 그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서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에 우리가 갈 수 있는, 살고 싶은 소도시를 추려나갔다. 제주도, 전주, 강릉 등이 후보에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여행으로 다녀와서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익숙했던 곳, 외가가 있어 서울을 벗어나도 나의 마음이 편안했던 곳, 강릉을 우리의 두 번째 정착지로 선택하고 그 섬을 벗어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