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먼저 떠나보겠습니다
마흔을 앞두면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십 대는 싱글의 자유로움과 미래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고, 삼십 대에는 결혼, 출산, 육아를 한꺼번에 겪고 비로소 살 만하다 느낄 찰나, 마흔이 코앞이다. 마흔의 무게와 중압감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마흔쯤 되면 어른일 줄 알았는데, 아이만 둘 있지, 생각하는 건 십 대 때나 이십 대 때나 다를 바 없다.
남편의 월급은 늘지 않았는데 그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하나로 시작해서 넷으로 늘어났다. 줄인다고 줄일 수 있는 생활비가 아니었다. 생활비는 매달 조금씩 마이너스였고, 분기별로 나오는 상여금과 내가 간간이 하는 도면 아르바이트로 그 마이너스를 메꿔 나갔다.
서른여덟, 우리는 변화에 도전하기로 했다. 남편이나 나나 평생을 살아왔던 서울을 떠나는 것, 회사를 그만두고 낯선 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 무모한 도전이지만 한 번쯤은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많지 않고, 잃을 것이 없으니 선택이 쉬웠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잘 살고 있고, 집도 직장도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인데 왜 떠나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반응, 자신들은 못하는데 과감히 도전하는 우리들의 결정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강릉으로 떠나면서 송별회 자리가 많았는데,
그 당시 마흔이었던 지인의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마흔 쯤이 되면 다들 고민이 많아지더라.
너네는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그런 선택을 하다니, 진짜 대단해.
2년이나 앞서가는 너희를 응원할게
우리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고민과 선택이 2년이나 앞서간다고 해주니 시간을 번 느낌이었다.
다 버리고 떠나지만, 성공해서 다시 서초로 돌아오겠다고, 그때는 양재 말고 반포로 돌아오겠다고 큰소리치며 그곳을 떠나왔다.
반포가 뭐라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