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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큼 Aug 07. 2023

외가_강릉의 첫 기억

나의 외가는 강릉시 주문진읍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읍이었는데,

1995년도 명주군이 강릉시로 통합되면서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다.'군'에서 '시'로 승격되어도 주문진은 여전히 '읍'. 군부대를 지나 소나무가 가득하고 오죽이 뒷마당에 있는, 향호'리'의 시골집이 나의 외가였다.


나의 어릴 적 추억과 기억은 모두 외가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 때마다 외가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는데

엄마와 함께한 기억은 없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나랑 언니만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멀미를 참고 참다가 꼬불꼬불한 대관령을 다 넘을 때쯤 버스에서 멀미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지금 둘째 아이가, 딱 기억 속의 내 나이인데, 엄마도 없고 핸드폰도 없이 고속버스를 탄다는 상상, 감히 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30여 년 전의 그때는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외가는 산골 중의 산골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버스의 종점에서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데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에 4번, 막차는 7시였다. 화장실은 재래식, 심지어 마당을 지나 외진 곳에 있었고, 집 뒤쪽에는 동굴도 있었다.

6.25를 겪은 할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만든 피신처였다고 했다. 서늘하고 어두워서 감자를 보관하기도 했고, 나의 숨바꼭질 공간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에게 불편함만 가득한 시골집이었는데, 그래도 방학마다 그곳에 가는 게 좋았고 설렜다.

여름방학에 할아버지 경운기 타고 바다 가서 놀았던 것, 물놀이 끝나고 칠공주막국수집에서 김가루 잔뜩 들어간 물막국수 먹었던 것, 할아버지와 민화투로 시작해 아홉 살 땐 고스톱 점수내기까지 마스터한 것. 감자캔 것, 소 여물준 것, 농사지은 작물을 장에서 팔고 4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할머니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린 것, 주말이면 이모가 주문진 읍내에 데려가 돈가스와 비후까스를 사 준 것, 겨울에는 눈떠보니 내 키만큼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던 것, 그 눈에 비료포대에 지푸라기 두 개 넣고 눈썰매 탄 것 등 나의 10대의 추억과 여행은 온통 외가였고, 강릉이었다.


20대에는 강릉보다는 가보지 못했던 곳,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났었고, 휴가는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떠나야 나의 업무스트레스를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외가를 다시 찾게 된 건 아이를 낳고 난 이후였다. 한 여름 어린아이와 함께 해외여행대신 선택한 강릉바다는 기억 속의 그 바다보다 더 멋졌다. 그동안 여름휴가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여서 싫다고 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만큼 아름다웠고, 그 북적임마저 여행지에 온 것 같아서 신이 났다. 그 안에서 아이가 모래놀이 하며, 바닷물에 발 담그며 자유롭게 노는 모습에 다시 강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가 오지 않았던 시간만큼 할머니 할아버지는 늙으셨고, 아이들 데려오면 더없이 반가워하셨다. 그 후로 시간만 나면 아이와, 아이친구들과 함께 자주 오게 된 외가는 아이에게도 익숙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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