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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큼 Aug 07. 2023

전원생활의 현실

현실은 외롭지만 코로나로 적응했습니다

내가 이사 온 곳은 구정‘면’, 외가와 같은 시골 마을이다. 하루에 시내버스는 4번 들어오고 걸어서 나갈 수 있는 곳은 테라로사뿐. 어디든 나가려면 차는 필수이다. 우리 외가 동네랑 다른 점은 구정면은 평지이고 현대적인 전원주택마을이 조성되고 있는 중이었다.

100평의 땅에 40평은 집, 60평은 마당이었다.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집이라니, 로망은 현실이 되었다. 대형 트램펄린과 여름에는 아이들 수영장으로 마당은 가득 찼다. 날씨 좋은 날은 마당에서 바비큐파티로 매일 여행 온 기분이었다. 집 안에 있는 벽난로는 전원주택 낭만을 최고로 높여주었다. 정월대보름날, 아이들과 거실에 앉어 부럼깨고 벽난로에 소원지 태우며, 우리의 성공을 기도하기도 했다. 매주 주말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고, 강릉으로 놀러 오고 싶은 친구들이 많아서 주말 예약현황판을 만들어 공유해야 할 정도였다. 많은 친구들이 도시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전원생활을 선택한 우리는 한마디로 ‘용자’였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많이 외로웠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과 아이 둘 뿐이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 집에 남아서 하루종일 우두커니 TV만 보았다. 마음먹고 동네 산책 나갔던 날,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바람에 조용한 시골 길이 떠들썩 해지기도 했다. 줄 없는 개들이 달려들어 동네 산책은 하루 만에 끝냈다. 동네 개들도 무서웠지만 아무리 걸어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마주치지 못해서 겁이 났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고, 아이가 둘이나 있지만 갑자기 모르는 아저씨가 곁에서 걷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저녁에 남편과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본 적도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로망과는 달랐다. 가로등 없는 깜깜한 시골길, 고라니 울음소리, 동네 개 짖는 소리.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인 동네 산책이었다. 사진으로 남기면 아름다운 장면으로 보이지만, 영상으로 보게 되면 낭만적이지 않은 그런 일상들이었다.


차가 한대뿐이라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시간 맞춰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약속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날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나간 날은 이사 오고 한 달이 훌쩍 지난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가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로 갈아 타 남편의 가게로 가는 코스였다. 내가 버스 타고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남편에게 가는 길이 처음 버스 타는 사람처럼 설렜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 38년을 살던 나는 무척 활동적이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일도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모든 걸 서울에 다 놓고 온 것처럼 강릉에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마당의 잡초를 뽑는 것, 집 앞 카페에 가서 라테를 한 잔 시키고 앉아 여행 온 사람들의 설레는 얼굴을 보는 것, 주말에 친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전원주택의 삶에 지루해지려고 했을 때,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춰졌다. 폐쇄적인 시골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유로워진 생활.

거리두기가 한창이고, 사람들로 북적인 도시에서 마스크까지 써야한다니, 너무 답답해보였다. 우리 동네는 사람 마주칠 일이 없으니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다.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고, 첫째 아이의 입학도 4월이 지나서야 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집 마당에서 돗자리 펴놓고 캠핑놀이하고,집 앞 계곡 시골길을 산책하며, 우리만의 비밀의 숲을 만들어 아지트로 삼고 매일 산책을 갔다.

24평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갇혀 있었을 생각을 하니, 이 시골의 삶이 감사했다. 나만 갇혀있지 않는다는 안도감이었는지, 나는 갇혀있어도 좀 더 자유롭다는 우월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강릉생활을 즐기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서울로 못가니 마음을 비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을 인정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 편해진 건 마음 맞는 이웃의 덕도 무척 컸다. 옆집에 사는 동생이었는데, 말도 먼저 건네주고,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니 숨통이 트였다. 아이들도 또래였고, 성별은 다르지만 셋이 죽이 잘 맞았다. 곤충채집, 슬라임, 보드게임, 레고 등 집과 마당에서 온갖놀이를 만들어 매일 함께 했다. 역시 어딘가에 적응하려면 아이나 어른이나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가 생기니 외로움이 덜했고, 활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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