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주(獨走)에서 안전한 협주(協奏)
여담입니다만, 개인적으로 10여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 서울 반포대교 위에서 제 차는 정차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진동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제 차를 그대로 받아 버렸습니다. 다행히 뒷좌석에 탑승한 사람이 없었고 저도 타박상 이외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제 차의 뒷좌석은 반파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큰 사고였습니다.
119 응급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트럭을 운전하신 기사분이 저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불편한 몸을 움직여 그분에게 다가가 다치신 데는 없는지 괜찮으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그제야 다소 놀란 듯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사과를 하면서, ‘제가 깜빡 졸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왜 졸았는지를 그 짧은 시간에 들려주었습니다.
트럭 기사님은 밤샘 근무가 끝났는데 추가 택배 물량이 있다며 배달을 해 달라는 회사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었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운전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추가 택배 업무를 하다가 그만 깜박 졸았다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짧은 시간에 저에게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읍소했던 것 같습니다. 기사님은 개인 사업자로 본 사고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본 별과 온몸의 타박상 이외에 큰 부상이 없었기에 입원이나 통원 치료 없이 파손된 차량에 대한 정해진 보험 처리만 진행하고 사고를 종결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교통사고를 통해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나만 행복하게 문제없이 잘 산다고 내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견(一見) 나의 삶과 상관없어 보이는 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님의 형편이 나의 삶의 안전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트럭 기사님은 왜 졸음운전을 했을까?
아니,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밤샘 근무를 마친 개인사업자 신분의 트럭기사에게 추가 배달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회사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배달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정말 없었을까?
없었다면 밤샘 근무를 한 사람에게 추가 배달을 요청하는 것이 회사 경영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회사의 요청은 택배차량 하나가 전재산이자 사업이반인 트럭기사에게 지시와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 택배 회사는 배달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정상적인 방법과 프로세스로 처리할 수 없는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택배회사에 요청이 아닌 지시와 압박으로 느껴지게 하는 또 다른 주체, 예를 들어 화주가 있었을까?
트럭 기사는 왜 졸았을까'라는 질문은 기사의 개인적인 문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제환경과 시스템의 복잡한 관계와 문제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트럭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원인은 개인의 부주의뿐만 아니라 과도한 노동, 장시간 운전, 불충분한 휴식 시간, 경제관계자들 간의 계약 구조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 경제 시스템이 더 이상 개별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관계하는 각 경제주체들이 상호작용하고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공정한 관계, 이익 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이 가능한 문화를 사회 전반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영국의 극작가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행동하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무엇이든 하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그것은 간접적으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라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의 메시지 또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겪는 강요나 불평등은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뜻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성장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기업이 사업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하나의 성공이라면 그 성공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은 몇 단계로 나뉠 수 있는데 가장 높은 단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업과 협력이 가능한 시스템, 그리고 문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장의 3단계를 살펴보면,
1단계는 성공의 카피(Copy)입니다
이는 이전에 목표 달성을 한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의 성공의 경험을 살려서 현재의 성과를 유지하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성공의 확장입니다
한 기업이 A라는 사업에 성공했다면 그 경험을 살려 B라는 사업에 도전하여 성공을 확장하는 단계입니다. 사업의 확대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A라는 사업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형태와 방법은 달라도 해당 사업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B라는 사업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단계는 확대된 기존 사업들의 안정적이 유지와 새로운 성장입니다
1단계와 2단계의 성공을 지속할 수 있는 성장을 이루어 내면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 요구되는데 확대된 기존 사업들의 안정적인 유지와 새로운 성장입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획력, 추진력보다 협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관계 구축이 중요해집니다.
현대의 시장경제 환경은 전례 없는 변화와 발전을 겪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시대로의 전환에 따라 제조, 유통, 판매, 고객 관리, 연구개발 등의 과정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분산,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업이든 일정 단계 이상의 규모를 넘어가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관계를 구축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업의 쇠퇴를 겪게 됩니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단순히 주고받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반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기업의 성장이 파트너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본 기업의 성장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동반성장은 모든 관련자가 공정하게 이익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신뢰를 형성하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를 논할 때 단순한 규모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경제규모가 어떤 문화(文化)적 배경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화적 요인이 사회적 자본이며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신뢰 지수가 높고 낮음을 명확히 객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신뢰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가족주의, 혹은 ‘우리’를 강조하는 문화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가족주의, 혹은 우리 그룹, 우리 기업에 기반을 둔 저 신뢰사회의 특성을 보여왔습니다. 해방 이후의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을 겪는 혹독한 역사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주의와 ‘우리’를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중심으로 현재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주의와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서로의 희생을 통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유용하고 필요한 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경제적 성공을 넘어 지속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 전 체적적으로 가족주의의 라는 신뢰를 넘어 상호 협력하고 동반성장을 위한 신뢰를 기반으로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신뢰가 높은 문화는 성장의 열매를 공평하게 가 아닌 공정하게 나눔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고 협력하는 능력을 말하며, 이는 개인, 기업, 심지어는 전체 국가의 경제 성장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성공과 성장을 지속하고 싶다면,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협업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신뢰(trust)는 가족과 ‘우리’라는 유대 관계에 의한 신뢰의 의미와 비중이 큽니다. 이제는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넘어 지속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관계자들과의 동반성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뢰(trust)를 우리 경제의 문화로 정착시켜 나가야 할 때입니다.
트럭 기사는 왜 졸았을까?
트럭 기사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들 간의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적절한 조건과 대우가 이루어졌다면 우리 사회의 트럭 기사들이 졸음운전을 하는 빈도는 높은 비율로 감소하고 그로 인해 다른 경제 주체들이 안전이 더욱 보장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현대 사회의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성공을 유지하고 성공의 영역을 확대하며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고받는 계약관계를 넘어 파트너 기업과의 탄탄한 관계 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파트너는 서로의 이익과 위험을 공유하고 분담합니다.
이런 관계는 서로의 역량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신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단지 당사자들 간의 이익과 성장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할 새로운 경제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웃소싱 혹은 BPO 기업과 같은 파트너와의 전략적이며 동반성장이 가능한 협력관계는 각 기업에게 있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경영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나의 기업이 성장하면 파트너 회사가 성장하는 공식보다 파트너 회사들이 나의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성장하면 나의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의 사업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지속성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현명한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