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운명 - 마틴 메러디스(휴머니스트) ●●●●●●●●●●
식민 통치의 잔재는 아프리카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독재 통치와 온정주의, 통제 정책의 전통이
새로운 지도자들이 물려받은 각종 제도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독재자와 지배 엘리트 계층의 통치 아래에서 극심한 곤경을 치르고 있다. 이들 독재자들과 지배 엘리트 계층의 가장 큰 관심은 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실주의 체제를 활용하면서 국가 자원의 상당 부분을 탕진하고 있다. 또한 외국 회사들의 활동에 관여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더 많은 재산을 끌어모은다. 이들이 확보한 부의 대부분은 호화로운 생활에 탕진되거나 외국 은행 계좌나 외국의 투자처로 빼돌려진다.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개인 재산의 40퍼센트가 아프리카 밖에 있다고 추정했다. 이들의 탐욕적인 치부 활동은 부정부패의 문화를 번성케 하고 이 문화는 사회 여러 계층까지 퍼져나간다. 2002년 아프리카 연합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아프리카에서 부패로 인한 비용이 연간 1,48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 p. 940. 아프리카를 위하여
. 어마어마하다. 북동쪽의 끝 이집트로부터 대각선을 그어 중부 서안의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와 가나. 거기서 다시 또 가로로 직선을 그어 나이지리아와 차드와 수단을 거쳐 동쪽으로 가면 그 반대편에 에디오피아와 소말리아가 있고, 거기서부터 케냐와 우간다와 탄자니아를 따라 내려오면 콩고와 앙골라와 나미비아와 짐바브웨를 거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른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 참고문헌과 각주를 제외하고 내용만으로 940쪽에 이르는 이 괴물 같은 책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2차대전 후 걸어온 길을 빠짐없이 따라잡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은 판에 박은 것 같이 독재와 가난과 기근으로 점철되어 있고, 내전과 학살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인 지경이다.
. 1950-60년대를 거치며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을 쟁취했고, 독립 이후 정권을 잡은 건 대부분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워 온 독립투사들이었다. 가나의 은크루마, 케냐의 조모 케냐타, 말라위의 반다, 코트디부아르의 우푸에부아니 등은 독립투쟁 경력을 배경으로 국민들의 지지와 신망을 얻었으며,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어 국정을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오랜 독재와 철권통지를 펼쳤으며, 부패했고, 나라를 가난과 절망의 늪에 빠뜨렸다.
은크루마, 나세르, 상고르, 우푸에부아니, 세쿠 투레, 케이타, 올림피오, 케냐타, 니에레레, 카운타, 반다 등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다 건국의 주역이 된 1세대 지도자들은 대단한 명성과 명예를 누렸다. 이들은 각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았고, 명성을 이용해서 손쉽게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권력 독점을 추구했으며, 독재적인 통치 체계를 구축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했다. 상고르의 말을 인용해본다. "과거 군주정 시대에 군주가 백성을 대표한 것처럼 대통령은 민족을 대표한다. 모디보 케이타, 세쿠 투레, 우푸에부아니의 '통치'에 대해 대중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다. 대중은 이들 속에서 신이 선택한 자들의 모습을 본다."
- p. 240. 해방 직후의 정국
. 마틴 메레디스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결같이' 독재와 가난과 부패의 길을 걸었던 이유가 독립 이전의 식민 통치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오랜 식민통치를 겪는 동안 아프리카 인들이 접한 정치체제는 독재뿐이었고, 심지어 독립투쟁 과정에서 생겨난 민족의식은 독립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분리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출신지 유권자들의 지원을 호소했고, 당선이 되고 나서는 재정과 자원을 자기 지역으로 끌어오기에 급급했으며, 이권의 단맛을 본 주민들 역시 이를 유지하기 위해 혈족이니 민족이니 하는 패거리주의를 적극 수용한다. 그 결과 특정 민족의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독재정권이 탄생했고, 그들은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탄압했으며, 이권대립이 극대화되면서 쿠데타와 내전이 벌어졌다. 풍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심에 찬 정치인들은 출신 민족의 지원을 호소하고, 출신 지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개발사업을 조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그들은 사실상 출신 민족에 의존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정부 자금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이었다. (중략) 유권자들은 대표들을 전리품의 일부를 차지해서 자신들의 공동체로 돌려줄 수 있는 출신 민족의 후원자로 여겼다. 근본적인 충성심은 여전히 민족의 정체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혈족, 씨족, 민족과 관련된 고려가 유권자들의 행로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한마디로 아프리카 정치의 핵심 요소는 혈족 집단이었다.
- p. 232. 독립국가의 탄생
. 거기다 냉전이 무너져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이런 파국은 더 가속화되고 잔혹해졌다. 소말리아에선 무장단체의 내전으로 국가 체제가 무너졌고 뒤늦게 개입한 미군 역시 헬기가 격추되는 수모만을 겪은 채 물러나야 했다. 그에 이어 르완다에서는 온 세계가 방관하는 가운데 후투족에 의한 끔찍한 민족청소가 자행되었으며,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서는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놓고 끝없는 내전이 벌어져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소년병이 대거 양산되었다. 심지어 콩고에서는 북쪽의 리비아에서부터 남쪽의 앙골라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참전한 대륙전쟁이 벌어졌고, 이 전쟁은 무려 2002년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 저자는 이런 50년에 걸친 아프리카의 운명을(책의 제목을 '아프리카의 비극'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그런 50년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이 나라 저 나라로 계속 초점을 바꿔가며 끈질기게 서술해나간다. 평생을 저널리스트와 저술가로 활동한 저자이기에 역사서라기보다는 르포 기사를 읽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읽기 쉽게 쓰여져 있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국가가 아닌 대륙 전체의, 무려 50년에 걸친 실패와 절망의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간신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녹초가 되어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왔을 때 읽은 - 보통은 있는지도 모른 채 넘겨버리기 십상일 한 쪽짜리 짤막한 - 머릿말은 저자로 하여금 이 거대한 작업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대단한 이야기'를 넘어 '위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숱한 역경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아프리카 서민들의 해학과 쾌활함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들의 의연함을 증언하고자 이 책을 썼다.
- p. 5.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