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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y 06. 2024

영웅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문학동네)  ●●●●●●●●○○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나,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죽음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는 두려움,

   아직 되돌아온 여행자가 하나도 없는

   미지의 나라가 우리의 뜻을 흔들어

   우리로 하여금 차라리 기존의 고난들을 계속 걸머지게 하여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내적 반성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이리하여 결심의 본색은

   우울이라는 창백한 색으로 덮여서

   지고의 중요한 거사들은 이로 인해 노선이 바뀌고,

   실행의 이름조차 잃게 된다. 

                                                                                                                                                          - p. 101.




   . 위대한 아버지의 죽음.

     삼촌에게 권력과 어머니를 빼앗긴 아들. 

     복수와 안타까운 죽음, 슬픔과 추모의 결말. 


   . 그리스 비극의 고전적인 구도를 본따온 이 작품이 기존의 문학과 선을 긋고 

     새로운 문학의 시작점이 되는 것은, 

     중간과정으로서가 아닌 - 그 자체가 목적인 '고민'에 의해서이다. 



   . 어떤 등장인물도, 신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조차도 햄릿을 도와 문제를 해결하거나 길을 제시하지 않으며 햄릿 역시도 주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연극이라는 멋진 계책을 통해 아버지를 죽인 삼촌의 공포와 전율을 확인하고 그가 살인자임을 확신한 상황에서, 이제는 모두가 햄릿의 치밀한 복수가 이뤄지겠구나 생각하는 장면에서 그는 갑자기 무력하게 외국으로 보내지더니 기껏 돌아와서는 오해로 인한 무의미한 칼싸움에 휘말려 죽어버리고 만다. 마지막에 삼촌을 죽이기는 하지만, 이는 악에 대한 통쾌한 응징이라기보다는 파멸을 앞둔 이의 우발적인 몸부림에 불과했다. 


   . 그런 햄릿이 이 작품에서 주체적으로 하는 것은 오로지 고민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결혼해 왕비 자리를 보전한 어머니에 대한 실망, 도저히 알 도리가 없는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현 상황을 타개할 길이 없는데서 오는 절망에 햄릿은 끝없이 고민한다. 그리스 비극에서와 달리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에서 고민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구나 중간과정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이야기의 끝까지 답을 얻지 못한 채 그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인간을 보여줄 뿐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고민은 과정이 아니다. 고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이 이야기가 당시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갔을 때에는 낯선 이야기였을거라는 걸 읽어낼 수 있다. 주인공이면서도 선이든 악이든 어느 쪽으로도 속시원하게 행동하지 않고 오로지 고민하기만 하는 인물에게 관객들은 답답하다며 야유를 보내고 연극은 외면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관객들은 영웅이 아니라 고민하는 한 인간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용감하고 의연하며 주체적인 '자신과는 다른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저하고 고민하며 두려워하는 '자신과 같은 인간'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던 것이, 햄릿이 관객들에게 제시되었던 순간인 것이다. 





   그 애는 화관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러자 옷자락이 활짝 펴져 인어처럼 수면에 떠 있으면서 오필리어는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더래.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란 사람처럼 말이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마침내 옷자락에 물이 배어 무거워져 아름다운 노래도 끊어지고 

   그 가엾은 것이 시냇물 진흙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고 말았지. 

                                                                                                                                                          - 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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