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얼마나 작은지, 욕심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암흑의 핵심 - 조셉 콘라드(민음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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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 동안 그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네.


아프리카의 해안은 마치 아직도 생성중인 것처럼 단조롭게 음침한 빛을 띠고 있을 뿐 거의 아무런 형상을 띠고 있지 않았다네. 거대한 정글의 가장자리는 너무 검푸른 색을 띠고 있어서 거의 검어보이다시피 했으며 하얀 파도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저 멀리 마치 기어다니는 안개로 인해 흐릿하게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따라 자를 대고 그어놓은 줄처럼 직선으로 펼쳐져 있었어. 태양은 강렬했고 대지는 번뜩이며 증기로 인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듯했지. 여기저기 하얀 파도 안쪽으로 회백색의 지점들이 무리지어 나타나곤 했는데 그 상공에는 아마도 깃발인 듯한 것이 펄럭이고 있었어. 그런 곳들은 몇백년이나 된 정착지였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광대한 밀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탓인지 작은 점처럼 보이더군.

- p. 30.




. 원래 리뷰를 쓸 때 책의 줄거리를 따로 요약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 책만큼은 어느 정도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다. 일단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다, 힘들게 읽어냈다 하더라도 정체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 불투명하고 거대한 무언가에 둘러싸여 무기력해지는 어렴풋한 느낌만 남고 세부사항은 슥슥 지나쳐가기 때문에. 그래서 줄거리를 보고 나서도 이런 내용이 있었어? 싶은 부분이 다수였다. 지금 와서 떠올려봐도 처음에 아프리카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였는지 기억이 흐릿할 정도니(....)


. 아무튼 정리해보자면 역마살이 낀 주인공 말로는 인도니 중국이니 태평양이니 하며 온 세계를 돌아다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어딘가의 큰 강(묘사를 보면 거의 콩고 강일 것이다)에 매료되어 친척의 소개를 받아 그 지역을 관할하는 브뤼셀의 무역회사에 입사한다. 그 과정을 보면 면접이고 뭐고 '누구시라고요? 오케이 선장 합격! 출발은 내일입니다 행운을 빌어요'라는 식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거기서부터 분위기가 싸하다. :)


. 아니나다를까 도착한 아프리카는 전혀 문명화되어 있지 않고, 암흑과 열기 속에서 해안을 향해 포를 쏘아봤자 흔적조차 남지 않을만큼 광대하다. 그걸 보면서 말로는 이 거대한 대륙에 인간이 진출해 문명화를 시키겠다고 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어 그는 내륙에서 상아를 수급한다는 커츠를 만나러 가는데,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이 만들었다는 기지들이 불타 폐허가 되거나 전염병으로 비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말로 자신이 탄 배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격을 당하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펼쳐진 전투는 밑도끝도 없이 어영부영 끝나버린다. 그런 고생을 겪으면서 말로는 간신히 커츠가 있는 기지에 도착하지만, 드디어 만나게 된 커츠는 상아를 창고에 가득 쟁여놓은 채 이것들을 누구에게도, 어디로도 넘길 수 없다고, 내게는 원대한 계획이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열에 들떠 자신의 사명을 강변하며 광대하고 어두운 대륙에 삼켜져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그 참담한 호소, 못난 협박, 엄청난 규모의 간악한 욕망, 그 야비함, 그 고통, 그의 영혼이 겪은 폭풍 같은 고뇌 등이 기억나더군. 그후에 나는 그가 어느 날 침착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이 많은 상아는 사실 내 것이지요. 회사는 그 값을 치르지 않았어요. 내가 신변의 큰 위험을 무릅쓰며 손수 이 상아를 모았다구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마치 자기네 소유물인 것처럼 이 상아를 차지하려 하겠지요. 참 어렵게 되었군요.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항거할까요? 내가 원하는 건 공정한 처사뿐이라구요...." 라고 말하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

- p. 167.





. 후우.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하자니 흐르는 물을 손으로 휘저어 막아내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건 이런 줄거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광대하고 이질적인 대륙을 마주하고 그 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감정에 동조하는 것일텐데. 특히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사건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은 대신 주인공의 심정을 직접 듣기엔 딱이다. 그렇게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열기와 암흑에 휩싸인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륙을, 한 세계를 개척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야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구, 하늘 및 바다로 구성된 그 거대한 빈 공간에 영문도 모르게 자리잡은 군함이 대륙을 향해 포격을 하고 있었던 거야. 펑 하고 6인치 대포 중의 하나가 발사되면, 작은 불꽃이 뻗쳤다 사라지고, 약간의 흰 연기도 보였다 사라지고, 작은 탄도 하나가 휘익 소리를 냈지만, 사실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는 않았다네. 도대체 아무 변화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구. 그 모든 과정에는 광기가 감돌고 있었고, 그 광경에는 애처로운 익살감이 섞여 있었을 뿐이야.

- p.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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