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낸 작가의 초상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 너새니얼 호손(민음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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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나비보다 더 멀리 나는 다른 나비를 붙잡은 것이었다.



로빈은 다소 메마르게 대답했다.

"아저씨 덕분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 덕분에 결국 제 친척을 만나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으실 거예요. 도시 생활이 지겨워지기도 하구요. 저, 나루터 가는 길 좀 일러주시겠습니까?"

"이봐요 로빈, 안 되오. 적어도 오늘 밤엔 안 되오."

신사가 말했다.

"며칠 있어 보다가 그래도 정히 돌아가고 싶다면 그떈 빨리 돌아가도록 도와주겠소. 만일 우리랑 같이 여기에 계속 머물기로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똑똑한 젊은이니까 당신 친척인 몰리네 소령 도움 없이도 성공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오."

- p. 35.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 열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을 읽으면 미국의 초기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사회적으로는 독실한 청교도 신앙 아래서 경직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호손은 작중에서 그런 청교도 미국의 모습을 옹호하는 쪽에 서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에드거 앨런 포나 허먼 멜빌 같은 작가가 활동했다는 걸 생각하면 꽤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


. 그렇게 보면 꽤 의외인 점이, 그의 대표작인 '주홍글씨'에서 호손은 당시의 종교 기준에서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간통녀이자 사생아까지 낳은 헤스터 프린을 가장 선량한 인물로 그려내며, 그런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믿음이당시의 경직된 청교도 사회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주홍글씨를 읽었을 때는 당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작가였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달리 이 단편집의 단편들 중 일부는 종교 카테고리로 분류해도 무리없을만큼 독실한 믿음을 대변하고 읽는 사람에게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이야기들이다.





"'천국의 도시'로 떠나지 않으셨던가요?"

라고 내가 물었다.

"그랬었죠."

'만사 태평'씨는 조심성 없이 내 눈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듣자하니까 영 좋지 않은 이야기뿐이어서 그 도시가 서 있다는 높은 언덕을 아예 오르지 않았죠. 할 일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 음악만 연주한다지 뭡니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해도 그런 곳에서는 살 수 없지요."

- p. 197. 천국행 철도.




. 일례로 '천국행 철도' 같은 단편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당시 사람들의 편의적인 믿음을 비판하고 있고,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은 당시의 풍습에 대해 청교도 이념이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비유하는 소설이다(그래서 굳이 이런 단편까지 수록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처럼 종교와 사회가 분리된 시대의 독자로선 주홍글씨의 작가가 천국행 철두나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의 작가와 같다는 걸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데, 정작 호손 자신은 전혀 그런 위화감 없이 본인이 하고 싶던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독실한 신앙인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간과하지는 않았던, 그 정도의 스탠스였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헤스터 프린의 모습 역시도 요한복음의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니까.


. 그 외에도 당시 영국과 미국간의 관계를 블랙유머로 풀어낸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이나, 맹목적으로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몰락을 그린 - 하지만 그런 추구가 무엇보다도 순수하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 -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반점' 같은 단편까지는 읽어볼만했다.



나비는 떨리는 빛을 발하며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아기 쪽을 향해 애써 날아가 아기의 손가락 위에 막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비가 아직 공중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의 날카롭고 영리한 표정을 담은 힘세고 튼튼한 그 아이가 그 놀라운 곤충을 잡아채서 손 안에 꼭 쥐었다. 애니는 비명을 질렀다. 피터 호벤든 영감은 차고 경멸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장이는 힘주어 아이의 손을 폈다. 아이의 손바닥에는 반짝거리는 금속조각들만 쌓여 있을 뿐 아름다움의 신비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웬 워랜드로 말하자면, 그의 일생에 걸친 노고의 파멸같기도 한, 그러나 결코 파멸만은 아닌 이 광경을 차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 나비보다 더 멀리 나는 다른 나비를 붙잡은 것이었다.

- p. 248.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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