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국일미디어)
[이 글은 리뷰의 리뷰로,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 한 달 동안 프루스트를 읽었다. 이야기의 길이와 대화의 길이와 문장 하나하나의 길이에 당황하고 고전했다. 지지부진한 이야기와 정리되지 않은 중얼거림 하나하나가 그대로 묘사되는 주인공의 생각과 이런 장면이 진짜 필요한 건가 싶은 살롱의 대화들에 진저리를 쳤다. 사실 분량으로만 얘기하자면 이 책을 능가하는 책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유독 힘들게 느껴졌던 건 이런 길디 긴 이야기가 으레 가지고 있는 '서사'가 극히 적었기 때문이었다.
. 어렸던 시절의 주인공이 잠을 설치는 묘사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라 할만한 스토리를 찾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종종 찾아오는 스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린 주인공이 풀어놓는 묘사가 한참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장면이 바뀌어 소년이 된 주인공은 '화류계'라 부를만한 가게에 있던 작은 할아버지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 주인공 대신 스완과 그 여인(오데트)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그 둘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교계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권 가까이 흘러간다. 그런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는 질베르트를 만난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 2부도, 3부도, 그리고 4부까지도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진행되는 짧은 이야기와, 사교계 인물들이 나누는 '아무래도 좋을법한' 길디 긴 이야기가 계속 턴을 주고 받는다. 아무래도 좋을 법하다는 말은 좀 가차없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봐도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와의 관련성이라는 측면에서 딱히 유의미하냐면 솔직히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훨씬 많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전체 내용과 이어지는 필수적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뒤에 와서의 이야기고,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는 동안에는 어떤 게 전체와 이어지고, 어떤 게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미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일이 들어가서 막힌 곳을 하나씩 메꿔야, 다음으로 연결된 길이 나타나니까.
.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샤를뤼스 씨의 등장으로 긴장감을 품은 채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1부에서 4부까지를 읽는데 20일 정도가 걸렸던 것에 비해 5부와 6부는 각각 하루만에, 그야말로 '읽어치웠다'. 추리소설에 익숙하다면 많이 읽어왔을 심리 스릴러의 느낌도 있기 때문에 읽기에 더 수월하기도 했고. 의심으로 인해 알베르틴을 조금씩 조금씩 숨막히게 조여가는 주인공, 그로 인한 파국과 후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그동안의 온갖 위선과 거짓, 변명과 합리화를 내던지고 자신을 직시하게 된다. 비록 파국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거짓된 자신을 딛고 올라서기엔 충분한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프루스트는 주인공을 성장시키며 대단원을 준비한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에 꼭 맞는 '되찾은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7부. 프루스트는 마지막 7부를 통해 지금까지 힘들게 이야기를 만들어간 주인공과, 독자와,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느 새 주인공과 뒤섞여 하나가 된 그는 주인공(혹은 자신)이 겪은 실패와 좌절, 의미없이 허비된 것만 같은 사교계에서의 길디 긴 대화와 그 속에서 흘러간 - 때로는 속물스럽고 때로는 허무했던 일들 모두가 -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져 이야기의 원천이 되어주었다고, 때를 놓친 채 흘러가고 허비되고 잃어버린 것만 같은 지난 시간들이지만 실제로는 잃어버리지 않은 채, 계속 이어져 지금의 나 자신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그리고 또한 다음 세대를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읽는 내내 어디로 갈 지 예상조차 할 수 없던 이 거대한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작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 대한 위로로 막을 내린다.
나는 나의 장대 다리 역시 발 아래에서 드높이 뻗어있다는 생각을 하자 몸서리가 났다. 이미 까맣게 멀리까지 내려가 있는 그 과거를 자신에게 오래 붙들어 매어 둘 힘이 아직 내게 있을 성싶지가 않아서. 얼마간이라도 나에게 작품을 완성시킬 만한 오랜 시간(long terms)이 남아있다면, 우선 거기에, 공간 속에 한정된 자리가 아니라, 아주 큰 자리, 그와 반대로 한량없이 연장된 자리 - 세월 속에 던져진 거인들처럼, 여러 시기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고 큰들, 수많은 나날이 차례차례 와서 자리잡는 여러 시기에 동시에 닿기 때문에 - '시간'(Temps) 안에 차지하는 인간을 그려보련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