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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에

맏물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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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꼬마가 무슨 나쁜 기운을 알겠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젓가락을 얹은 큼직한 대접과, 자그마하고 윤기가 도는 유부초밥을 담은 접시가 나왔다.

우선 순뭇국을 한 모금 홀짝이고, 모시치는 저도 모르게 "호오"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거 맛있군."

모시치가 평소에 먹는 것과는 달리, 이곳의 순뭇국은 작은 순무를 통째로 넣었다. 순무 잎이 조금 들어 있을 뿐, 그 외에 건더기라곤 들어 있지 않다. 국물은 맛도 진하고 색깔도 짙은 갈색 된장으로 끓였고, 약간 탄내가 나는 듯한 독특한 풍미가 있었는데 담백한 순무의 맛에 잘 어울렸다.

- p. 43. 오세이 살인사건.






. 미야베 미유키의 독자라면 이제는 '오캇피키'라는 단어가 그닥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경찰에서 고용하는 사설탐정사 정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조선처럼 에도 막부 역시도 극도의 작은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에 치안에 있어서도 민간의 영역이 상당히 넓었기에 이런 직책이 있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코인의 모시치'는 미야베 미유키의 첫 에도 시리즈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등장한 오캇피키이고, 마을의 이런저런 사건을 맡아 활약한다.


. 전편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모시치 혼자 사건을 해결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 편에서는 과거를 숨기고 포장마차를 하는 노점 주인과 그 지역의 주먹패 두목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중간부터는 신통력이 있는 소년까지 나타나면서 몸집을 불려 꽤 흥미있게 전개되어 간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그닥 반응이 없었는지 아쉽게도 에코인의 모시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리즈는 이 맏물 이야기로 끝나고, 세대교체를 통해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가 등장하는 '얼간이 시리즈'와 '기타가타 사건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기타기타 시리즈에선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에코인의 모시치하면 누구나 아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있으니, 출간된 시점과는 달리 에도시리즈 세계관에서도 상당히 이른 시간 대에 속하는 소설인 셈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장님, 오하루의 일과, 그 천 냥이 뭔가 관련이 있다는 뜻인가요?"

모시치는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자네는 어쩌겠나?"

"어쩌다니요?"

"오하루를 택하겠나, 천 냥을 택하겠나?"

갑자기 오센이 모시치의 뺨을 때렸다. 저질러 버리고 나서 그녀 자신이 더 놀란 모양이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가쿠지로가 허둥지둥 부축했다.

"그거면 되었네, 안심했어."

맞은 뺨이 따끔거렸지만 모시치는 씩 웃었다.

"오하루에게 잘해주게."

그런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 p. 121. 천 냥짜리 가다랑어.




. 이번 단편집에선 모시치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품고 노점을 찾아가 야참을 먹다가 문득 사건의 진상을 깨닫기도 하고, 가끔은 모시치가 털어놓는 사건 내용을 듣고 노점 주인이 진실에 접근하는 힌트를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읽다보면 노련한 모시치에게도 남의 추리에 의지하는 시절이 있었구나 싶지만,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제시하는 사건들은 단순히 진상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에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건 모시치의 역할이다. 사람들 사이에 얽히고 맺힌 갈등과 응어리를 때로는 단호하게 끊어내고, 때로는 정성스럽게 한올한올 공들여 풀어주는 모시치의 통찰을 보고 있자면 - 그리고 노점주인이 만들어주는 음식 묘사들을 보고 있자면 후속편이 없는 게 새삼 아쉬워진다.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다로 감 지로 감'. 그 외에 '천 냥짜리 가다랑어', '얼어붙은 달'도 추천할 만하다.





니치도는 건방진 느낌으로 턱을 쳐들었다.

"남자가, 다른 남자의 목을 뒤에서 팔로 졸랐지요."

그 정도는 검시를 했던 관리의 조사로 알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느냐?"

니치도는 낮 동안에 달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켜 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이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 방에는 미움의 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정중한 말씨에, 희미하게 기가 꺾인 빛이 보였다.

"어떤 미움이었는지 아느냐?"

니치도는 더욱 더 곤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곧 어머니가 감싸듯이 다가와 니치도를 가마 안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니치도 님은 나쁜 기를 씻어내러 왔을 뿐이니까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꼬마가 무슨 나쁜 기운을 알겠나" 하고 모시치는 내뱉었다.

아사타로가 세이지로를 죽였을 때, 거기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의 눈에, 에도 아가씨 오린의 그 화려한 옷이 어떻게 비쳤을까. 내일 먹을 밥도 없어서 머리를 숙이러 온 형에게 빌려 줄 돈은 없다고 말하면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정교한 세공을 한 마른 과자 상자를 선물로 내미는 동생을, 아사타로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형제가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마음을, 고작해야 열 살짜리 꼬마가 어떻게 알겠는가.

- p. 160. 다로 감, 지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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