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환상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

영혼의 집 - 이사벨 아옌데(민음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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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모습이 마술에라도 걸린 듯 순식간에 고운 회색가루로 변해버렸다.




"얘야, 관을 열어보자. 로사가 보고 싶구나."

내가 하이메에게 말했다. 하이메는 내가 번복할 수 없는 굳은 결심을 내렸을 때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나와 관리인이 등불을 알맞게 기울이고, 하이메가 세월이 흘러 검게 변한 청동 나사못을 풀었다. 우리는 납덩이처럼 묵직한 관 뚜껑을 들어올렸다. 나는 카바이드의 희끄무레한 불빛을 통해서, 오렌지꽃 신부 화관을 쓰고 누워 있는 초록빛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로사를 볼 수 있었다. 옛날에 로사가 처갓집 식탁 위의 하얀 관에 누워 있을 때 봤던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황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로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몸을 기울여서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의 영원한 연인의 입술 위에 키스했다. 그 순간 삼나무 사이에서 산들바람이 불어, 그때까지 밀폐되어 있던 관의 갈라진 틈새로 바람이 들어가 변함없던 신부의 모습이 마술에라도 걸린 듯 순식간에 고운 회색가루로 변해버렸다.

- 2권, p. 109. 쇠락의 시대.




. 신비스러운 성장 과정과 이를 통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게 된 클라라에서부터 딸인 블랑카와 손녀 알바, 그리고 그녀들의 곁에서 3대 50년을 살아가고 늙어간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이야기. 처음에 이야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남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떠올랐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마지막까지도 환상과 상징 속에서 끝을 맺은 것에 비해 이 소설은 역사적인 사실로 끝을 맺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환상의 세계에 남은 마르케스의 작품이 더 좋긴 했지만, 그 '아옌데'였기에, 도저히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로 잘 알려져 있는 1973년 9월의 칠레 쿠데타. 20세기 초 중반까지 칠레를 장악했던 보수정권은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해나가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계급과 빈부의 격차는 점점 고착화되었고, 결국 민중들의 불만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상류층과 중산층의 불신에 외국의 공작까지 더해지면서 아옌데 정권은 경제 위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아옌데 대통령은 자결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오촌 조카였던 이사벨 아옌데는 망명하여 작가의 길을 걷게 되고, 그렇게 쓰여진 게 이 영혼의 집이다. 그랬기에 그녀는 이 이야기를 허구로 끝마치지 않고, 소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며 언젠가는 알바와 같은 새로운 세대들이 독재를 종식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클라라 외할머니는 정신을 집중시켜 개집에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종이나 연필 없이도 생각만으로 글을 써보라며 알바에게 권했다. 그러고는 한 술 더 떠서 알바가 지금 아무도 모르게 겪고 있는 그 끔찍한 고통을 언젠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글을 써보라며 권했다.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평온하고 정돈된 삶 한편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만방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들이 뗏목에 몸을 싣고 슬픔의 바다 위를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상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행복에 겨운 그들의 세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두운 곳에는 방황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 2권, p. 295. 진실의 시간.





. 그래서 이 작품은 묘하게도, 마치 그리스 신화가 그런 것처럼 환상의 시대에서 역사의 시대로 넘어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평생 환상 속을 걷던 클라라와 철저하게 현실을 살던 에스테반이 결합하고, 그들의 딸인 블랑카는 어린 시절에는 순수한 사랑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그 빛을 모두 잃어버린 채 아버지처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손녀인 알바의 대에 이르면 이제 더 이상 환상은 그 어느 곳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 뜻만은 남아 꿈을 품은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이어나간다. 이렇듯 이 작품은 남아메리카 소설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기보단 그리스 신화나 '대지' 같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3세대 구성'을 띠고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이 소설을 썼던 시점의 이사벨 아옌데에게는 소설 그 자체보다는 소설을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바는 외할머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 속에 기록을 시작하자마자 개집은 그녀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로 가득 찼다. 그들이 정신없이 몰려와 서로 밀치며 자기네들의 얘기와 미덕, 악덕을 늘어놓으며 알바를 에워쌌다. 그들은 다큐멘터리 식으로 기록을 작성하려는 알바의 의도를 깡그리 무시한 채 증언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알바를 끈덕지게 재촉하고, 서두르라며 조르고, 성화를 부렸다.

알바는 그들이 하는 말을 완전히 무서운 속도로 받아 적었다. 그렇지만 새로 한 페이지를 쓰면 전 페이지가 지워져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다. 그러면서 알바는 그 일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새로운 얘깃거리가 떠오르면 금세 다른 얘깃거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계속 이야기의 흐름이 끊겼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약간이라도 두렵거나 아프다고 느끼면 그녀의 이야기는 털실뭉치처럼 그냥 엉켜버렸다.

그렇지만 곧 사건들을 순서대로 불러내는 방법을 고안해 자기 이야기 속에 완전히 푹 빠진 알바는 먹는 것도, 몸을 긁는 것도, 악취를 맡으며 킁킁거리는 것도, 불평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결국 알바는 수도 없이 많은 고통들을 하나하나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 2권, p. 296. 진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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