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할 것도, 우월할 것도, 신비스러울 것도 없는

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한길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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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이하게 보이는 신앙들이나 관행들이라 해도 면밀히 검토해보면,
평범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상황, 욕구, 활동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에서 밝히고 싶다.



. 마치 개강-수업-종강으로 구성된 한 학기 동안의 대학강의를 보는 듯한 열 네편의 이야기를(여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까지 넣으면 정말 한 학기 16주 과정이다!!! ^^) 시작하면서 마빈 해리스는 '모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풍습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선언한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암소를 종교적으로 숭배한다는 이유로 잡아먹지 않고 평상시에도 암소가 길거리를 지나다니는데 사람이 피해간다거나, 성경에서 음식을 성별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거나, 알래스카의 재산파괴 풍습이나 뉴기니의 유령화물에 대해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원시사회라, 미개하니까' 그렇다고 단정해버리고 접어두지만, 실제로는 그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도 전혀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기까지 한" 이유가.




소를 죽이고 쇠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금기는 흑소의 작은 체구와 그 놀라운 생존능력에서 보여주는 적자생존의 산물의 하나가 아닐지 모른다. 한발과 기아를 겪는 동안, 농부들은 자기들의 가축들을 잡아먹거나 팔아넘기고 싶은 많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런 유혹에 굴복한 자는 한발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를 없앤 후 비가 오게 되면, 그때에는 이미 토지를 경작할 수단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 p. 30. 거룩한 어머니 암소



.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인도의 암소숭배가 그들만의 비합리적인 풍습이 아니라 우리가 가뭄이 들었다고 내년에 뿌릴 종자를 먹어버리지 않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도에서 암소는 그저 한가롭게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팔자좋은 동물이 아니라 우유와 송아지, 땔감(소똥은 가연성 물질이 잔뜩 함유된 상당히 효율적인 땔감이라고 한다)을 생산하는 중요한 생산수단이며, 더구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풀과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덕분에 유지비용도 절감된다. 그러니 암소 숭배는 서민들의 생산수단을 보장하고 가축을 기르는 비용을 절감시키는 지극히 경제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럼 성경에서는 왜 돼지를 혐오할까? 사막기후에서는 돼지를 기르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돼지고기 맛을 들이지 않도록 돼지 자체를 혐오스러운 동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마빈 해리스는 이곳저곳의 풍속을 탐구하면서 각 지역의 풍속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어리석거나 그 반대로 신비한 것도 아닌,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세계 각 지역의 풍속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에서 시작한 이 책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부와 보상의 관점에서 뉴기니의 유령화물 숭배를 설명하다가 거기서 메시아 신앙과의 공통점을 끌어내 대비하고, 기왕 기독교 얘기가 나온 김에 중세 마녀사냥의 이면을 파헤치고, 그걸 다시 현대(이 책이 나온 건 1975년이었다)의 히피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마빈 해리스는 당시 주류의 입장에서 히피문화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에게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구호를 외치면서 신비한 체험을 갈구하고 마약에 의존하는 히피문화를 가지고선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세련된 지배구조를 상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관념의 유희나 일시적인 기분 같은 것으로는 착취와 소외를 야기하는 물질적 근거를 바꿀 수 없다. 제3의 의식(당시 유행하던 반문화운동 단체)은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구조에 근본이 되고 원인이 되는 그 어떤 것도 변경시키지 못할 것이다.

- p. 243. 결론




.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날카롭고 명확한 메시지를 가지고 당시의 젊은층을 꿰뚫어버리는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다. 처음에는 그들이 솔깃해 할 법한 인도나 원시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는 중간 정도까지는 그들이 결코 미개한 것이 아니며 우리보다 딱히 못할 것이 없다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반대로 그들이 우리에 비해 결코 특별한 것 역시 아니고 합리성을 벗어나 그들을 신비스럽게 보는 것 역시 잘못이라고. 신비주의로 도피하는 것이야말로 자본과 권력이 바라는 것이라며 능수능란하게 날선 비판으로 전환하는 솜씨는 글쓰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구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




결국 마녀광란이 지닌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로부터,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 괴물들의 환상적인 행위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들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들이 되었다.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간파해내기 힘든 적들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등장했다.


- p. 223. 대 마녀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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