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걸쳐 중세와 근대 초기의 회고록을 읽은 나 자신도 생물학적 구조가 나와 똑같은 인간들이 정말 그토록 묘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음을 믿기 어렵다.
성장과 숭고라는 기본적 이상, 신경과 감각과 감정의 새로운 언어, 전쟁의 핵심 경험 일체,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금언. 이런 요소들이 결합해 만들어진 수많은 거대서사는 서로 상이하고 상반되기도 하지만, 모두 동일한 가정을 공유하며, 공통적으로 전쟁을 경험적 계시로 보았다.
- p. 378. 전쟁 경험의 거대서사
. 이제는 완전히 인류의 역사에 대한 베스트셀러 저자로 자리매김한 유발 하라리가 아직 군사사를 주요 주제로 삼던 시절의 글. 책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정말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게 되는가?" 라는 단 한 줄의 질문에서 시작해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조사해간다. 저 한 줄로부터 유발 하라리는 500년이 넘는 전쟁의 역사와 전쟁에 뛰어든 이들의 방대한 수기를 제시하면서 독자를 설득해나가는데, 인류의 역사를 다룬 사피엔스나 미래를 예견한 호모 데우스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한 줄로 책 한 권을 써내다니 애초부터 뭘 써도 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 한국 역시도 전쟁에 대한 급격한 인식의 변화를 겪은 나라이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마냥 낯설지는 않다. 4반세기 전쯤 나온 영화나 드라마에선 치열한 전투와 그 속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을 그리는 게 보통이었지만, 최근에 나오는 작품에서는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희생되는 비극적 개인의 모습을 그리는 게 당연해져 있다. 아예 요즘에는 전쟁에서 뭔가 성과를 내는 장면 자체를 시대착오적이라며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꽤 있는 듯하고. 특히 6.25를 다룬 영화들을 시대순으로 늘어놓고 변화를 보면 과연 이게 같은 전쟁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전쟁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계기는 무엇이었는지는 물론 그 변화가 다시 전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이야기해나간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개개인의 감수성과 자아가 중시되어 병사들의 지위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개개인의 전투능력이 상승해서 대규모 편제가 가능해지면서 전쟁의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서술하는 부분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책에서 직접 언급하는 건 아니지만, 고대에는 수십수백만 병력이 동원 가능했는데 중-근세에는 동원 규모가 확 줄었다가 근-현대에는 다시 고대 수준의 병력 규모를 회복하고 그걸 넘어서 초대규모의 전투가 가능했는지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중-근세에 이르러 병사들이 정예화되면서 병사 하나하나를 육성하는 비용은 크게 늘어났지만 경제규모나 병사에 대한 처우가 아직 뒷받침되지 않아 병사들의 사기나 사명감이 낮았기에 자연스럽게 병력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근-현대에 이르러 병사들의 지위가 오르고 교육을 통해 사명감을 불어넣으면서 통제가 가능한 규모가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아직 철도나 전신 같은 신기술이 보급되기 전부터 대병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렇게 인식의 변화가 전쟁의 모습 자체를 뒤바꾸게 된 것이다.
새로운 군대는 단순히 인원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기동력 있고 규율 잡힌 대중 집단이었다. 새로운 군대가 성공한 비결이 이것이었다. 감각주의적 교육과 기능이라는 이상이 강압과 감시를 포섭과 독립적인 주도권으로 대체하고, 포섭과 독립적인 주도권은 더 온건한 규율로 월등히 많은 인원을 경제적으로 모집하고 기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p. 289. 생각하는 사병의 탄생
.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치면서 향상된 개개인의 감수성과 사회적 지위가 전쟁경험을 단순히 톱니바퀴가 아닌 주체적인 경험으로 보게 해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쟁에 참전하는 당위를 찾아내고, 사명감을 가지게 된 병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깨달음'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이는 "왜 전쟁을 통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게 되는가" 에 대한 답일 뿐이지, 정말 "전쟁을 통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게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유발 하라리 역시도 그러한 '깨달음'은 전쟁을 원하는 이들에 의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도, 조작될 수도 있다고 하며 답을 보류하고 있는데.... 이제는 인류와 역사 이야기로 너무 유명해져버린 유발 하라리라, 과연 언제 그 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좀 많이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헤스가 생각한 대답은 간단했다. 나치의 이상이 경험의 시험을 거쳤다는 것이다. 감각주의 공식은 감수성 X 경험 = 지식이다. 그리고 나치 친위대원들은 분명히 극한의 경험을 겪었다. 친위대원들이 극한의 '경험'을 겪으면서도 자기 감수성을 온전히 지켜냈다면, 이는 그들이 진정한 지식을 획득했고 그들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된 명분, 곧 나치의 이상이 순수하고 정당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