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커다란 분무기 ]
지독하게 매콤한 게 당기는 날이다.
오전에 청소를 마치고 거실 문을 열었다. 데크 양끝에 기다랗게 달아 놓은 빨랫줄에 방금 세탁을 마친 소파커버를 널면 오전 일과는 끝이다.
축축한 소파 커버를 하얀색 빨랫줄에 '척' 하고 걸쳐 올리고는 손으로 '탁탁' 쳐가며 평평하게 펼쳐주었다.
유난히 눈부신 햇살과 적당히 부는 바람 덕분에 빨래가 금세 마를 것 같았다. 이런 날은 무엇을 해도 잘 풀릴 것만 같다.
가벼운 마음이 들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으 자 자자자'
데크 밖으로 지난 초겨울에 가지치기를 한 소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 자리 잡은 수국이 수줍게 새싹을 틔우고 있는 게 보였다.
'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구나.'
그런데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흙빛을 머금은 초록의 생명체, 잡초였다. 하룻밤 사이에도 몰라보게 쑥쑥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기세인데, 손바닥 만 한 마당을 가진 내게는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침입자였다.
적당히 욕심부리지 말고 딱 그만큼만 그 영토에서 자라면 좋으련만, 자꾸만 욕심을 내서 확장해 가니 다수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다. 내게도 영락없이 밉상이다.
올해는 약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잡초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긴 바지와 긴팔 티셔츠, 장갑까지 챙겨 살 한 점 드러나지 않게 무장을 하고 창고로 향했다. 한쪽 구석에 보관해 둔 대용량 분무통을 끄집어냈다. 내 등짝보다도 큰 파란 몸통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이걸 보니 단지 파랑 색이 예뻐서 구입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에 나무 소독을 하면서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올해는 이 녀석으로 초장에 잡초를 제압할 요량이다.
물을 틀어 겉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면서 보니 손잡이 부분에서 물이 샜다. 자세히 보니 길게 금이 가 있었다. 테이프로는 막을 정도가 아니어서 옆지기에게 수리를 부탁했다. 옆지기는 창고에서 실리콘을 꺼내와 금이 간 부위를 메워주었다. 완전히 마르기를 이틀이나 기다렸다.
그동안 잡초를 잡을 약도 하나 더 주문해 놓았다.
'이제 네 녀석은 잡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니 체증이 풀리는 듯했다.
이틀 후 다시 무장을 하고 마당으로 나섰다. 수리한 곳은 단단히 붙어 더 이상 물이 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터리가 말썽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작동이 됐는데 사용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먹통이 되고 말다.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반복해도 소용이 없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임이 틀림없었다.
'아휴, 산 넘어 산 일세.'
데크 벽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충전을 시작했다.
'펑! 치지지직'
코드를 꽂자마자 분무통에서 비명이 터졌다. 배터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깜짝 놀라 콘센트를 뽑아 멀찍이 던지고, 연기가 나는 분무통을 마당 쪽으로 후다닥 옮겼다. 혹시 불이 날까 봐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쉼 없이 쿵쾅 거렸다. 전기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았다. 연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두 주먹을 꼭 쥐고 그대로 서 있었다. 연기가 가라앉고도 한참 뒤에 데크 위로 다가가 보니 까만 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나마도 다른 곳으로 번지지는 않아 한시름 놓았다.
꼭 쥔 두 주먹을 펴고 손바닥을 펴니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뒷 목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마당에서 여전히 당당하게 불쑥 튀어나와 있는 잡초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단한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녀석들은 미동도 없는데, 나만 혼자 요란한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눈부신데 내 기운은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 듯했다.
잡초는 살았고 분무통은 사망했다.
오늘은 지독하게 매콤한 게 당기는 날이다. 군청에 들러 수거용 스티커부터 사 와야겠다.